정동영 당의장 초청 특강

  • 게시자 :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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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일 : 2003-11-11 00:00:00

▷ 일  시 : 2006년 4월 4일 10시
▷ 장  소 : 서울시 마포구 내 일성여자중고등학교
▷ 강연형태 : 초청특강
▷ 참  석 : 정동영 당의장, 노웅래 의원, 청청래 의원, 서혜석 의원, 이선재 교장


시골청년이야기
배움의 열정으로 일성여자고등학교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며 배움의 패기와 열정의 노력으로 하신 여러분께 존경스럽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이선재 교장선생님 훌륭하십니다. 1953년부터 53년이나 일성학교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 때문에 전쟁의 잿더미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가능했다. 이선재 교장선생님께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한은정 소위 올해 공군사관학교 수석졸업생, 강정 소위 해군사관학교 수석졸업생도, 고정은 경찰대 수석졸업생, 모두 딸들입니다. 작년 말에 사법시험, 외무고시, 행정고시 수석합격자 모두 여성, 확실하게 딸들의 시대이다. 최근에는 한명숙 총리지명자가 나오면서 명실상부한 여성의 시대가 도래했다.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남편이 끌려가서 13년간 남편이 감옥에 있었는데 순애보의 주인공이고 본인도 민주화 운동에 가담되어 체포되고 구속되고 재판을 받았던 한명숙 지명자의 얼굴을 보면 편안한 어머니 같은 부드러운 인상에 어디에 강인함이 숨어있는지 모르겠다. 이 땅의 모든 어머니와 여성들이 다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일 서울시장 출마예정인 강금실 전장관은 여성 재야법조인으로 검찰개혁을 해낸 강단의 소유자이다. 야당의 박근혜 대표 또한 이시대의 여성지도자이다. 정말로 좀 있으면 남성 할당제가 필요하다. 이 자리에 계신 어머니와 우리가 통과해 왔던 60년대 70년대 80년대 비해 21세기에는 아들이건 딸이건 능력만 있으면 배움의 열정만 있으면 배우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마당이 있다. 우리 어머니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희생의 바탕위에 만들어 졌다.


저는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율북리 마을에서 낳습니다. 어머니는 아들만 9명을 낳았다. 딸 낳는게 소원이 있다. 저희 집 뒷산이 회문산인데 남부군 사령부가 있었다. 가장 치열한 좌우대립과 민족상잔의 상처가 있는 동네이다. 6.25 끝난 뒤 형들은 세상에 없었고 5째로 태어났지만 장남 겸 종손이 되었다. 시골 마을 친구들은 아버지가 없었다. 마을 남자들은 6.25와중에 희생이 되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땅이 뼈아픈 상쟁, 비극의 땅이었다.


통일부 장관을 1년 반 하는 동안 제가 태어났던 정전협정체제가 53년 체제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것을 빨리 끝내고 평화체제로 가는 것이 이 민족의 이익이다. 통일부장관으로 제가 해야 될 사명감입니다. 아직도 남북문제는 어렵습니다만 50년대 60년 70년대 지나오면서 지금만큼 남쪽의 4800만의 국민이 북쪽에 위험을 느끼지 않고 있다. 남북관계관계가 안정되어 있고 6.25 기억으로 멀어져 있고 경제적 성취 바탕위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은 우리 역사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제가 살아온 시대나 어머니들이 시대들은 같은 시간과 공간들이었다. 저는 산골에서 태어나서 11살 때 어머니의 품을 떠났다. 산골에서는 자연이 저의 친구였지만 이 산속에 머물러서는 소년의 꿈을 펼칠 수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를 졸라서 유학을 갔다. 아버지가 시골 면장을 하고 도의원을 해서 지역의 유지를 해서 아버지의 도움으로 전주로 유학을 갔다. 산 고개 마루 넘어서 손 흔드는 어머니를 보며 후회했다. 5학년 때 떠났다. 삼촌네에 얹혀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살림이 기울고 어머니가 몸져누우셨다. 굉장히 어려워진 생활 속에서 방황하다가 대학 시험에서 떨어지고 농사짓기에는 몸이 약하고 재수해서 가까스로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가자마자 10월 유신이라고 박정희의 종신집권 체제를 만들었다. 인간의 기본인권과 언론, 출판, 결사, 신체의 자유가 없는 야만의 시대가 시작했다. 우리는 과거가 좋았다고 말하지만 70년대를 통과해온 사람들은 한명숙 총리 남편은 13년 징역을 살았지만 그 남편은 대학생의 금서의 독서클립에 가입했다가 징역을 살았다.


학교 다닐 때 무기정학 당하고 긴급조치 위반으로 서대문 구치소에 가고 어머니가 생각하시기에 큰아들을 버릴 것 같아서 시골에  남아있는 논 몇 마지기 팔고 서울로 한양대 뒤 사전동에 방 3칸짜리 이사를 왔다. 재봉틀을 두고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군대 갔다 와서 어머니랑 3년 평화시장에서 옷을 파는 장사를 했다. 추석이나 설날 때는 대목이니까 밤잠을 안자고 일을 해서 돈 벌이기가 되었다. 평소에 경기가 안좋을 때는 답답하고 시장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평화시장에서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볼까 생각했지만 그리고 MBC기자 시험에 붙어서 기자를 하게 되었다. 17년간 언론인으로 살았다. 지금은 언론이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다. 무서워서 보도를 못하는 세상은 아니다. 저는 기자하는 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제가 전하고 싶은 사실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없었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열 번도 넘게 사표를 낸 적도 있었다. 80년대 광주학살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살아있는 자의 부끄러움을 느낀다. 지금도 망월동에 가면 현장의 기자로서 한마디도 국민들에게 전할 수 없었던 부끄러움을 느꼈다.


1996년 김대중 전대통령이 국민회의를 만들었을 때 정권을 바꾸겠다고 나오셨을 떄 이 나라의 언론과 정치.경제,사회를 위해서도 일단 한번 정권을 바꾸는 것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이다. 제가 도움이 된다면 정권을 바꾸는데 벽돌 한 장의 역할을 하게 위해 17년 언론인의 길을 바꿔서 정치에 입문했다. 1997년 정권교체 동시에 IMF 국가부도 사태가 일어났다. 민주 개혁세력이 집권했으나 그 포문을 펴 볼 시간도 없이 국가 부도 위기 사태를 진정하는데 골몰 할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8년 지났다. 대개 IMF걸린 나라들은 7-10년 걸린다고 한다. 그때 잘못 되었으면 나라가 통쨰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지금 보면 자영업이 7=8년 전에 비해 두 배로 늘었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에 식당만 60만개가 있다. 인구 80명당 식당이 하나이다. 장사가 되기 어려운 구조적인 어려움이 있다. 양극화 현상을 헤쳐나가는 것이 여야 정부를 막론하고 최대의 숙제이다.


1953년 일성고등공민학교가 시작했을 때 대한민국은 잿더미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53년 만에 세계의 내놓을 만한 인권국가 민주국가를 우리 손으로 건설했다. 세계10위의 경제대국을 이뤘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반장이 교무실에서 옥수수빵을 타왔다. 우유도 한 조각씩 주었다. 저는 우유가 생전 처음 먹었는데 우유가 고체인줄 알았다. 원조를 받아먹고 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구상에 원조를 받았던 나라가 한 세대가 가기 전에 원조를 주는 나라가 바뀐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1963년 광화문의 건물을 짓는데 한국에 기술이 없어서 필리핀 건설회사가 와서 지어주었다. 필리핀은 1960년대 1000불짜리 나라였는데 지금도 1000불이다. 40년 동안 제자리 걸음동안 대한민국은 160배 커졌다. 대한민국처럼 경제 규모가 큰 나라가 9개국밖에 없다. 이 좁은 땅덩이에서 4300만이 손과 머리만으로 세계10위로 뛰어 올라갔다. 이 자리의 여러분의 피와 눈물도 그 속에 들어있다. 지나온 인생이 헛되지 않았고. 보람된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애국자이십니다. 어제 하인즈워즈, 한국계 김영희 어머니의 아들이 아메리칸 풋볼에 MVP로 선정되었다. 미국 국민들의 영웅이 되었다. 그 선수를 만든 것은 한국인 어머니이다. 이 나라 이렇게 만든 것은 어머니이다. 이 같은 성취가 단순히 경제, 먹고 사는 것에 그치면 값어치가 덜하다.


동시에 우리는 1997년 헌법에 규정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 신체의 자유, 직업의 자유, 언론, 출판,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 이것을 200% 향유할 수 있는 누구도 우리를 압박하거나 간섭할 수 있다. 내가 당당하게 법을 지키고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한 헌법이 정한 세계 선진 인권국가를 우리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과정에는 젊은이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 전두환, 노태우 시대를 통과하면서 우리 손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다. 국경없는 기자회라는 시민단체가 한국의 언론자유가 34등이라고 했다. 일본이 37등이고 미국이 44등이다. 아시아에서는 한국보다 위에 있는 나라가 없다. 4월 9일은 대구에 갈 생각이다. 인혁당 희생자들의 모역에 갈 것이다. 인혁당은 빨갱이가 아닌 관제 빨갱이라고 한다. 유신시대인 75년 4월 9일 사형이 집형되었는데 대구의 교사, 기자, 지식인 들이었다. 정권에 반대한 비판적 젊은이 들이었는데 김일성의 지시를 받는 국가전복 사회주의 혁명세력이라는 누명을 쓰고 4월8일 대법원이 판결했는데 18시간 만에 집행했다. 얼마 전에 김수환 추기경을 만나뵜더니 추기경께서 인혁당 사건에 말씀하셨다. 4월 8일 저녁 사제관에서 사형수의 가족들이 와서 ‘추기경님 살려주세요, 그들이 죽일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사형수의 가족들이 애원하려고 말했다. 추기경은 ‘아무리 그래도 그리 빨리 하겠느냐 고 날이 밝으면 알아봐 주고 기도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새벽 4시에 사형을 했다. 시신도 화장을 했다. 시신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것은 범죄행위다. 국가권력이 사법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권력이 죽인것이다. 현대사에서 30년간 가장 잔혹한 삶을 살아온 것은 가족들이었다. 미망인들은 주위의 시선도 따가웠고 먹고 사는 것에서 피눈물 나는 삶을 살아왔다. 제가 처음으로 
미망인들은 뵈었는데 할머니여서 사형수의 어머니이신 줄 알고 착각했다. 그때 젊은 주부들이었는데 30년 세월을 지난 뒤에 할머니가 되었다. 그들은 독재정권을 반대하고 비판했던 지식인 들이었다. 그 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낼 수 없었는데 과거사진상위에서 용공조작사건이라고 했고 법원이 재심이 시작되었다. 30년 만에 재판이 시작되었는데 아무리 진실이 다시 밝혀지지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돌려보낼 수가 없다. 정말 억울한 죽음이다.


어제는 4.3사태 58주년이었다. 공식통계로 3만 명, 비공식 통계로 제주에서 7만명이 죽었다고 말한다. 주민의 3/1이 죽었다. 그 동안 제주도민은 4.3의 4짜도 입도 뻥긋 못하고 살아왔다. 제주사람은 선거 때 여야를 다 떨어뜨린 것으로 분풀이 했다. 제주도에서는 무조건 무소속이 되었다. 무언의 항의의 표시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은 국가지도자의 자격으로 사과했다. 국가가 잘못해서 그 수많은 양민의 목숨을 학살한 것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하고 그리고 그분들의 명예를 회복했다. 이제 어두운 과거를 진상을 밝히고 새로운 삶을 사는 제주도민의 새로운 운명을 시작하고 있다.
제 개인적으로 10대, 20대, 30대, 시대의 굴곡마다 어려움을 겪었다. 정치인으로 해야 할 일은 이제 잿더미 속에서 황무지에서 오늘을 만든 대한민국을 저력을 모아서 사회계층이 통합하여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 남북이 평화롭고 번영하게 만든 세상의 과제가 앞에 있다. 이게 정치가 해야 할 일이고 앞으로 갈 길이 많이 있다. 민주주의, 경제적 발전은 성취했다. 아직 저희가 못 높은 벽은 분단, 이 지구상에서 같은 민족이 헤어져서 53년을 대립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우리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가졌다. 북쪽에는 110만 명이 8년간 군대복무를 한다. 남쪽은 70만 명이 군대복무를 한다. 세계 최강의 미국은 140만 명이 군복무를 하고 있다. 미국보다 더 많은 군대를 가진 나라는 남북 합쳐서 180만 명이 군대생활을 한다. 이것은 비극적인 상황이다. 이것을 끝내야 되고 바꿔야 된다.


대한민국은 깨어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에 대해 눈을 떴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이 아프리카를 순방을 다녀오셨는데 아프리카 53개국을 합쳐서 경제는 대한민국의 3/2밖에 안된다.
한국이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난 제프리존스는 나는 한국인이 두렵다는 책을 썼다. 30년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30년 후에 자동차, 배, 철강, 반도체에서 세계5위에 들어가는 기적의 나라이다.
대한민국사람들의 저력이다. 어머니들이 아들딸들을 잘 길어냈기 때문이다. 대단한 나라이다. 경제, 군사, 소프트 파워가 분출하고 있다. 최근 야구에서 일본도 이기고 미국도 이기고, 피겨스케이트에서 일등하고 한류 드라마가 아시아를 휩쓸고 있다. 중국류, 일본류도 없고 한류만 있다. 한국인의 독창성, 에너지가 있다. 한국 여성들의 미국 여성골프 장악했다. 한국인이 무서운 게 아니라 한국의 여성이 무섭다. 한국의 어머니와 여성들 위대합니다.


한국의 원동력은 교육입니다. 사교육비를 20%쯤 줄여서 삶을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같은 평생학습의 기능을 제공하는 일을 이선재 교장선생님이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부가 해야 되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이제 평생 배우고 열려있는 사회가 되어야 이 세상에 적응 할 수 있다. 여러분은 늦게 배운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선구자이다. 여러분의 이사회의 주류가 되어야 되고 여러분 같은 기회가 4800백만에 열려있어야 된다. 정부와 정치가 이런 문제를 뒷받침해야 한다. 빠른 시일 내에 김진표 교육부총리에게 부탁도 하고 평생교육을 책임지는 분들과 간담회를 조직해서 속시원하게 풀어드리도록 하겠다.
존경합니다.
 


2006년 4월 4일
열린우리당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