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는 '최연희 성추행 사건'을 은폐하려 했는가?

  • 게시자 :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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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일 : 2003-11-11 00:00:00

지금 ‘최연희 성추행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한나라당은 황급하게 최연희 의원의 사무총장직 사퇴와 자진 탈당으로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키려 하고 있다.


이번 ‘최연희 성폭력 사건’의 전말은 대략 이러하다.


1. 24일 오후 8시 - 박근혜 대표와 이규택 최고위원, 최연희(62) 사무총장, 이계진 대변인 등 한나라당 당직자 7명과 동아일보 편집국장과 정치부장, 한나라당 출입기자 등 7명이 시내 모 음식점에서 만찬.
2. 10시 10분 - 박 대표와 편집국장 이석, 나머지 참석자들은 가까이 있는 노래방으로 옮겨 ‘2차 술자리’, 최 총장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동아일보 여기자를 갑자기 뒤에서 껴안고 두 손으로 가슴을 만짐. 해당 여기자는 즉각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노래방 기계를 끄고 큰 소리로 성추행에 항의한 뒤 방을 뛰쳐나감.
3. 최 총장 - 동아일보 기자들에게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 미안하다”고 말함. 이규택 최고위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사과. 1차에서는 폭탄주가 몇 순배 돌았지만 2차에선 강제로 폭탄주를 마시는 분위기는 아니었음. 조명은 그다지 어둡지 않은 상태였음.


법이 정하고 있는 성폭력 예방강의는 성추행을 당했을 때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소리치는 것과 ‘유야무야 덮으려 하는 기도’에 맞서는 것을 교육의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인간적 수치심을 감내하며 이 사건을 세상에 드러낸 동아일보 여기자의 용기에 존경의 뜻을 표한다. 여기자의 용기는 앞으로 있을 수많은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와 수치심으로 목숨까지 끊을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아직도 고통스러워 하는 많은 피해 여성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이튿날(25일) 곧바로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대책회의가 열렸고 박 대표는 피해 여기자에게 곧바로 직접 전화를 걸어 ‘백배 사과한다.’고 말했지만 진심이었다기 보다는 이  사건을 무마하려 시도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백배 사죄한다고 해놓고 뒤통수를 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24일 사건이 있고, 25일 한나라당 대책회의가 있었고, 26일 최연희 사무총장은 한나라당 대표 자격으로 버젓이 민주노동당 정기 전당대회에 축하 사절로 참석한 것이다.  한나라당이 대책회의를 하면서 이 사건을 무마시키려 하지 않은 이상 어떻게 최연희 사무총장이 공식 사절로 가 유유자적하게 박수칠 수 있단 말인가?



                                    ▲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은 최연희 의원이 26일 민주노동당 
                                    정기 당대회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 매일노동뉴스   


박근혜 대표에게 해명을 요구한다.


1. 이 사건의 공개되지 않은 추가 사실과 공개되지 않은 동석자를 밝히기 바란다.
2. 사건 직후 대책회의 멤버는 누구였으며 어떤 대책을 논의했는가?
3. 박근혜 대표가 직접 나섰다고 하는데 피해 여기자와의 대화 내용 일체를 공개하라.
4. 박근혜 대표는 25일과 26일 오전에 걸쳐 한나라당이 어떤 무마 시도를 했는지 밝혀라?
5. 사건은 24일 발생했는데 왜 27일 보도 된 이후에나 밝히게 되었는가? 술 먹다 생긴 일이라 덮으려 했는데 여론이 악화되자 밀려서 사과한 것이 아닌가?
6. 피해 여기자는 최연희 사무총장의 공개사과와 사법처리를 처음부터 완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이를 무마하려 한 징후들이 있으니 이에 대해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요구에 박 대표는 진지하게 답변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는 1978년 발생한 공화당 ‘성낙현 의원의 여고생 성추문사건’을 은폐하려다 결국 성낙현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한 일을 상기하기 바란다. 1987년 발생한 전두환 정권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고문 살인에 대한 분노도 분노지만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은폐의혹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더욱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이것이 5공 정권의 조종(弔鐘)이었음도 아울러 상기하기 바란다.
 


2006년 2월 28일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서 영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