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검사 출신의 한나라당 의원들은 검찰의 독립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

  • 게시자 : 더불어민주당
  • 조회수 : 216
  • 게시일 : 2003-11-11 00:00:00

▷ 일  시 : 2005년 10월 18일(화) 15:10
▷ 장  소 : 국회 기자실
▷ 브리핑 : 이규의 부대변인


 


공안검사 출신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공안검사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 과연 검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을 거론한 자격이 있는 걸까?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단 한차례의 반성이나 양심고백 없이 이제 와서 자신들이 마치 “검찰독립”의 전도사인양 외치는 행태는 적반하장을 넘어 분노를 금할 길 없다.


▲ 김용갑(밀양농고·육사 71.11-85.2 기획조정실장) 중정 산하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80년 신군부가 등장한 이후 국가안전기획부 감찰실장과 기조실장 역임


▲ 김기춘(경남고·서울대 74.4-79.2 대공수사국장) 중정 파견 수사검사 시절에 재일교포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수사를 직접 담당. 이후 청와대 법률비서관으로 근무한 김 의원은 검사장, 검찰총장, 법무장관 등으로 승승장구함


▲ 정형근(경남고·서울대 83.3-95.3 대공수사국장·1차장(국내)) 친정인 검찰(75-83년)에서보다 시집(안기부, 83-95년)에서 더 오래 살았고 검찰로 돌아오지도 않았음. 검사경력 : 부산지검→춘천지검 강릉지청→서울지검→수원지검→서울지검을 전전하며 평검사. 안기부 경력 : 83년 안기부 대공수사국 법률담당관 → 제1차장실 법률담당 보좌관→대공수사국 수사2단장→대공수사국장→수사차장보→제1국장(기획판단국장)→제1차장(국내담당)


▲ 강재섭(경북고·서울대 85.5-88.4 제2특보실 분석연구실장) 박철언 전 안기부장특보를 따라 청와대와 국정원에 근무하면서 수많은 정치적 개입이 있었고, 검찰의 독립을 훼손시킨 사실이 있음.(박철언 회고록 제1권 참조)


▲ 최연희(서울고·서울대 90.1-91.8 대공수사국 수사지도실장) 안기부 근무를 마치고 청와대 사정·민정비서관을 거쳐서 춘천지검 차장으로 친정에 복귀


▲ 박종근(경북고·서울대 91.7-93.5 제2특보실 정책연구관)


▲ 권영세(배재고·서울대 94.9-97.8 특보실 정책연구관) 국회수첩이나 의원 홈페이지 경력난에서는 안기부 경력 고의(?) 누락인가. 94-97년 경력은 공백


▲ 홍준표(영남고·고려대 94.10-95.9 특보실 정책연구관)



검찰 중립 무력화 기도에 앞장선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사례1) 검찰이 정치적 판단하에 수사한 사례-장윤석


○ 1995년 7월 18일 서울지검 공안1부장 장윤석 검사는 “다른 나라에서도 성공한쿠데타를 내란죄로 처벌한 전례는 없었다”며 “법률가라면 우리 결론에 이의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례2) 1998년 12월 30일 박상천 장관, 대전지검장 직접 통화지시


○ 박상천 법무부 장관은 대전지검이 이원범의원 등 자민련 소속 국회의원 3∼4명의 공천헌금비리 및 개인비리로 자민련 대전시 지부를 압수수색한 것에 대해 98년 12월 30일 대전지검 송인준 지검장에게 "왜 하필이면 민감한 시기에 사전협의도 없이 압수수색을 벌여 물의를 일으키느냐. 공동여당의 공조에 금이 가지 않게 신경을 써달라"고 직접 전화하는 등의 월권행위를 함


○ 이 사건으로 박상천 장관은 17대 총선 당시 총선시민연대로부터 낙선의원 명단으로 꼽힌 바도 있으나, 검찰은 당시에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음.


사례3) 1987년 대우조선사태시, 노무현 변호사 2번 영장청구 후 기각 당하자 담당검사를 판사집 앞에서 기다리게 해 구속한 사례


○ 1987년 대우조선사태 때 쟁의의 해결을 위해 노ㆍ사의 교섭을 중재하고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법률적 조언을 했던 이상수ㆍ노무현 변호사가 ‘제3자 개입’으로 구속
오전 문희상 의장이 국가정체성 논란과 관련하여 여야 대표간 TV토론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서 한나라당측에서 다음 달에 있는 선관위 5당대표 TV토론으로 대체하자는 반응이 나왔다.


2005년 10월 18일
열린우리당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