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대 동양문화연구소 강연 자료

  • 게시자 :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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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일 : 2003-11-11 00:00:00
『 새로운 세기의 동북아 비전을 위한 제안 』


먼저, 이처럼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신 일본 정부와 동경대학교 그리고 이노구치 교수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참으로 적절한 시점에 소중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저는 일본의 정계와 재계의 많은 분들을 만나 한국과 일본의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동북아의 공동 관심사에 대해서도 폭넓은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생각과 고민을 많이 이해하게 됐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아울러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 역시 저와 동료 의원들과 함께 한 토론이 한일 양국의 진전된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1. 한국 정치의 변화에 대한 이해

먼저 한국 정치의 변화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 4.15 총선을 통해 한국 정치는 혁명적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성숙, 부패 추방,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려는 세력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했습니다. 명실상부한 의회권력 교체가 실현됐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며 한국 현대사에 매우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무엇이 이런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저는 한마디로 한국 국민들이 ‘정치의 현대화’를 선택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그동안 한국 국민들은 한국 정치에 대해 심각한 불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정치가 국가발전의 발목을 잡는다’거나 ‘정치가 싫어 이민 간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이런 불신이 깊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배경에는 한국의 정치가 급변하는 사회를 따라잡지 못한 채 낡은 방식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국민들은 첨단 멀티미디어 시대를 사는데 정치는 흑백 텔레비전 시대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난 4.15 총선은 국민에 의해 일거에 한국정치의 현대화가 감행된 일대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저는 앞으로 한국 정치가 빠른 속도로 변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이미 지난 총선에서 과거와 같은 금권정치가 거의 자취를 감췄고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었던 지역주의도 개선된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제 한국 정치는 부패를 추방할 수 있게 획기적 변화를 이뤘습니다.
민주주의 역시 훨씬 성숙해져 갈 것입니다. 특히 정파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갈등하고 대결하던 국회가 ‘상생과 협력’을 내걸고 정책경쟁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정치의 이런 변화는 한국 사회 전체의 변화를 선도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한국국민은 큰 자신감과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신감은 한국이 다시 한번 국력을 모으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한국 사회의 변화와 일본에 거는 기대

1) 동아시아 공동번영의 길

남북한과 일본 그리고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북아시아는 오랜 교류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문화적 유사성이 매우 높습니다. 최근 중국 경제가 급성장 하면서 경제협력의 중요성 역시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 핵문제와 과거사 정리문제 등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현안도 많습니다. 가까운 한국과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연간 교역량이 536억불에 이르고 해마다 400만 명이 상호방문을 할 정도로 교류가 빈번합니다. 중국은 한국의 제2위의 교역 상대국이고 일본은 제3위의 교역 상대국입니다. 인근 국가 사이에 이처럼 긴밀한 교류를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긴밀한 상호관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동북아 정세는 대립과 긴장이 반복되는 모순 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이런 불일치는 주로 불행한 과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과거 패권주의 시대의 상처와 그에 대한 역사인식의 차이가 상호 관계가 깊어져 가는 데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결적 양상을 띨 수밖에 없도록 작용하고 있습니다. 동북아 4개국은 상호협력을 통한 공동번영이라는 미래 대신 과거에 발목이 잡혀있는 셈입니다.

2) 공동번영을 위한 일본의 역할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바로 일본입니다. 일본은 동북아 경제의 강자이자 과거사 청산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점에 있어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랑스에 비해 산업화와 민주화가 늦었던 독일이 급격한 근대화, 산업화를 위해 폭력적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양국 관계는 전쟁으로 치달았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가장 먼저 근대화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근대화의 과정 역시 독일의 경우와 비슷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지금 유럽연합이라는 공동번영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유럽연합의 디딤돌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독일의 진실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국민들이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독일은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요즘 한일 사이의 문화교류가 활발합니다. 많은 한국의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이 일본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한국의 TV에서 한 일본인 탤런트를 봤습니다. 유민이라는 탤런트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한국 국민들이 유민이라는 일본인 탤런트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사실 일본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한국 사회에서 일본인 탤런트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저는 유민 씨의 성공을 보고 드디어 한국 국민들이 일본에 대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동북아의 미래번영을 위해 일본이 과거문제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본 사회, 특히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진실 된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동북아의 미래에 청신호를 밝히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3. 동북아 공동번영을 위한 제안

1) 중국의 역할에 대한 인식

동아시아의 공동번영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바로 중국입니다. 그런데 중국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중국을 바라보는 세계 각국의 시선이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 한국 등 인접 국가들은 한편으로는 협력을 통한 공동번영을 모색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차이나 쇼크’에서 입증된 것처럼 중국은 이미 세계경제 특히 동아시아 경제의 핵심변수로 떠올랐습니다. 중국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동북아시아 각국의 발전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중국과 인접 국가들이 구체적인 공동번영의 길을 모색할 시점이 다가왔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이런 점에서 큰 틀에서는 상호 협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하고 있는 유럽연합 모델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 동북아 공동번영을 위한 정치 지도자의 역할

이런 점에서 저는 남북한과 일본,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동북아의 미래 발전을 위한 담대한 비전을 설계하는 일에 나서줄 것을 제안합니다.
1962년, 프랑스의 쟝 모네가 ‘유럽공동체’를 처음 제기되었을 때를 떠올려 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유럽공동체의 꿈’이 실현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들이 먼 미래를 내다보고 담대한 비전을 선택함으로써 유럽연합의 기초를 닦았고, 오늘 유럽의 공동 번영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을 상기하고자합니다.
지난 1999년 한․일․중 3국 정상이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개최한 이래 동북아 3개국의 공동번영을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10월, 제5차 3개국 정상회의에서 ‘한․일․중 협력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14개 분야에 대한 구체적 협력을 결의한 것은 동북아의 공동 번영을 위한 소중한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선언에 따라 구성된 ‘3자위원회’ 가 오는 6월 창립회의를 열 예정입니다. 일본이 올해 3국 정상회의의 주최국인 만큼 동북아 3국 협력의 실질적 진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3) 한․일․중 FTA와 동북아 4개국 국회회담에 대한 제안

한국과 일본은 내년 FTA 체결을 목표로 활발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양국의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일 FTA의 체결이 성공적으로 완료된 후 반드시 한․일․중 공동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제안은 이미 1999년 3국 정상회담에서 3국이 연구기관을 지정해 협력해서 연구하기로 합의했던 사안입니다. 한국 속담에 ‘첫술에 배부르랴’는 말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검토와 연구가 필요한 일입니다만 한․일․중 3국이 담대한 비전을 세우고 시간을 갖고 추진한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제안할 사항이 있습니다. 이제 한국 국회는 본격적인 남북국회회담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미 북한 당국과 야당에도 제안을 한 바가 있습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남북국회회담이 본격화되어 성공적으로 진전되면 일본과 중국의 의원들과 함께 참여하는 동북아 국회의원 원탁회담으로 발전시킬 것을 검토하고 싶습니다. 북한과 일본,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이런 우리의 제안에 대해 진지한 검토를 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4. 동북아 평화협력의 공동체를 위하여

이상으로 동북아의 공동번영을 위한 제 생각을 말씀 드렸습니다. 저는 평화와 협력의 공동체가 동북아에서 실현되는 것은 인류사회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전지구적인 냉전체제가 해체된 이후에도 동북아는 예외적인 ‘위험지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동북아 구성원 모두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동북아 국가 및 정치 지도자들이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공동체 건설’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공유하고 결단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금은 공동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위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믿습니다.


2004년 5월 14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김 근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