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의장 대국민 호소문 발표 기자회견 질의 응답

  • 게시자 :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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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일 : 2003-11-11 00:00:00
 질의 응답
 유세 일정에 참가 하는가?
(오늘)중앙선관위원회에 가서 비례대표 사퇴서를 제출할 것이다. 어제 김성호의원이 비서실장 자격으로 사퇴서를 제출했으나 선관위에서 접수는 하지만 본인이 오기 전에는 처리할 수 없다고 통보가 왔다. 회견 끝나는 대로 중앙선관위에 간다. 오늘 저녁 거리유세에 참여할 것이다. 국민들에게 투표참여를 호소하고 4.15총선의 역사적 의미를 알리는 말씀드리겠다.

 판세를 어떻게 보는가?
투표율에 달렸다. 85년 2⋅12 총선으로 군사정권 아래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냈다. 2⋅12총선에서 국민의 참여가 폭발적으로 이뤄진 이후 12, 13, 14, 15, 16대 총선은 줄곧 국민참여는 하락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 총선의 경우 겨우 57.2%의 투표율을 보였다. 85년 2⋅12선거가 군사정권 치하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에서의 참여였다면 이번 4⋅15총선에서는 3⋅12쿠데타로부터 민주주의의 후퇴를 막고 전진시키는 폭발적인 국민 참여를 기대한다. 많은 국민이 참여하면 탄핵세력은 물러난다. 국민들의 참여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단식을 계기로 제가 태어나면서 살아온 과정을 되새겨봤다. 초등학교 3학년 때 5.16으로 헬기에서 삐라가 떨어지던 것을 거리서 주운 기억이 나고, 당시 장도영 중장, 박정희 소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 이후 제 인생에는 내내 박정희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중학교 때도 대통령은 박정희였다. 69년 고등학교 2학년 때 3선 개헌이 일어났을 때 통분한 심정이었다.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소년의 울분이었다. 72년 대학에 들어갔을 때 10월 유신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대한민국은 사실상 총통제 국가가 되었다. 대학교 1학년이던 72년 10월 유신독재에 무력했고, 분노했고, 통분했다. 유신독재 타도에 작은 힘이 보태질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다짐했다.
73년 10월 2일 유신 하에 처음 터져 나온 유신철폐 투쟁의 선두에 섰다. 이로 인해 마포서에 끌려가 한 달 동안 구류를 살았다. 73년 가을, 민청학련 선후배들과 부지런히 만나다 74년 4월 3일 대학생 연합시위를 통해 독재를 무너뜨리려는 학생항거는 긴급조치 4호로 좌절되었고. 나는 동대문경찰서에서 중앙정보부로, 그리고 서대문구치소로 끌려갔다. 거대한 악마의 무리 앞에 한 청년의 절규는 미약한 것이었으며, 좌절했고 분노했다. 강제징집으로 군대 갔다.
79년 10.26, 저는 그날 사회부에 사표를 냈다. 유신체제 기자로 살아가는 것 부끄러웠다. 그런데 그날 저녁 박정희가 시해됐다. 설악산 단풍 취재를 명령받고 사표를 쓴 것이 박정희 대통령이 생을 마감한 날이었다. 80년 5⋅18때 저는 사회부 기자로 광주에 갔다. 탱크가 광주에 들어오고 의사당을 뭉갰다. 또다시 민주주의에 대한 청년의 기대와 열망은 꺾이고 좌절되었다. 현대사 살아온 젊은 세대들과 동시대인들 모두가 겪은 참담함이었다.
1990년 3당합당 당시 저는 미국특파원이었다.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등이 3당합당을 통해 의회 과반수세력을 조작하였다는 소식 앞에 참담하고 부끄러웠다. 한국 민주주의는 언제 제대로 꽃피울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면서 부끄러웠다.
96년 방송기자의 길을 버리고 야당에 합류하면서 정권을 한번이라도 바꾸는 것이, 제가 철들면서 한국민주주의에 대한 원망과 열망과 기대 그것을 위해 돌멩이 하나가 돼도 좋다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정권교체 대열에 합류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수평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또한 노무현 개혁정권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제 삶의 궤적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지난 3⋅12 의회 쿠데타에 이르기까지 의회권력은 5회째 쿠데타의 연속이었다. 5⋅16,10⋅17,5⋅18,3당 합당,3⋅12탄핵. 다섯 번의 쿠데타를 통해 한국민의 선량한 민주의식을 짓밟았다. 4⋅15는 역사적 기회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했던 5⋅16 쿠데타 망령이 4월 15일 국민의 손에 의해 종지부가 찍혀진다면 저는 여한이 없다. 저의 정치 참여 목표의 모든 것을 이루게 된다고 생각한다.
철학교수 82명의 선언을 되새긴다. ‘우리는 전율한다.’ 저의 삶의 궤적을 쭉 돌이키며 저도 전율하고 있다. 어떻게 공교롭게, 아이러니하게 우리당의 책임을 맡아 선거를 치르는 역사의 날이 내일이다. 탄핵세력이 지역구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향해 약진중이다. 이들이 또다시 대한민국 국회를 장악할지 모른다는 불길한 조짐이 나타난다. 그래서 몸을 던진다. 제가 던질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던질 것이다. 비극의 역사를 여기서 종지부 찍고 싶다.

저는 국민의 힘을 믿는다. 피와 땀과 눈물로 여기까지 왔다. 내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찬란하게 부화할 것을 믿는다. 국민여러분께서 투표해주면 민주주의는 살아난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국정 안정이 이뤄지고 싸움정치가 종식되고 새로운 정치 시대로 갈 것이다. 그 첫 장을 여는 영광의 자리의 말석에 서고 싶다.

2004년 4월 14일
열린우리당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