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후보, '안동의 아들 이재명, 대통령으로 키웁시다' 안동 유세
이재명 대통령 후보, '안동의 아들 이재명, 대통령으로 키웁시다' 안동 유세
□ 일시 : 2022년 2월 28일(화) 오후 7시 30분
□ 장소 : 웅부공원
■ 이재명 대통령 후보
존경하는 안동 시민 여러분. 안동이 길러주신 이재명, 이제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돼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지금 오다 보니까 경남 합천에서 산불이 크게 나서 전국의 소방헬기가 총동원되는 상황인가 봅니다. 작년에 안동에서도 큰 산불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때 소방헬기 보내라고 지시했더니 벌써 다 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산불 안타깝습니다. 빨리 진화되길 바랍니다.
감회가 새롭다고 할까요. 정말 반갑고 가슴 벅찬 순간입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제 아내의 고향에 갔더니 따뜻한 봄날처럼 따뜻하고 푸근해서 마음이 편했습니다. 큰절 한번 했는데, 저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안동 선배님, 동료들, 후배들한테 큰절 한번 해야겠습니다. 여러분, 저를 오늘 이 자리까지 이끌어주신 것은 경북 청량산의 정기 아니겠습니까. 오늘은 통합, 경제, 평화 중요하다는 이런 이야기는 다른 데서 다 들으셨을 테니, 그것은 조금 줄이고 안동 이야기, 제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안동군 예안면 도촌동 지통마을이라고 불리는 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안동시장께서 애써주셔서 요새 처음으로 버스가 가는 길을 닦고 있습니다. 거기가 얼마나 산골짜기냐 하면, 어릴 때 귓병이 나서 아버지 손을 잡고 귓병을 고치러 어딘가를 갔는데 가보니 영양 읍내였습니다. 영양 읍내가 더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영양군 청기면, 봉화군 재산면, 안동군 예안면 3개 군이 접경하는 꼭대기였습니다. 누구하고 놀았겠습니까, 산토끼 잡으며 놀았습니다. 실제로 잡아본 일은 없습니다. 잡는다고 쫓아다닌 적은 무수히 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힘든 때도 많지 않습니까. 꼭 저처럼 어려운 길만 골라서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좋은 길 찾아갔으면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훨씬 더 부유하고 편안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대학을 가서 인생을 바꾸고 사법연수원을 마치면서 존경하는, 사랑하는 노무현 대통령께서 “운동하기로 마음 먹었으면 운동해. 변호사 안 굶어죽으니 걱정하지마. 빨리 개업해. 무슨 6개월, 1년씩 판검사 하다가 나간다는 생각을 하냐” 이런 이야기를 해주셔서 제가 용기를 얻어 소위 말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이후로 시민운동, 시장, 도지사로 살아오는 동안에 험하고 어려운 길만 일부러 골라서 다닌 것 같습니다. 절벽 끝을 걸어서 아슬아슬하게 살아온 인생 같습니다.
힘겨운 삶 속에서도 저는 이 안동에서 먹고 살기 어려워서, 개떡 아는 사람만 압니다. 보리개떡이 보리왕겨떡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보리왕겨로 떡을 만들어 먹으면 목이 콕콕 찔립니다. 정말 개떡 같습니다. 그런 개떡을 먹고 수시로 굶으며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고향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6km 가까이 걸어서 다녔는데 학교 갔다 오면 우리 어머니가 저 멀리 밭에서 일구시다가 아들 온다고 좋아서 기다려주시고, 제가 어머니 품에 안고 재롱떨던 시절이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비하면 객관적으로는 어려웠지만 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희망이 있던 세상, 아름다운 세상, 지금은 어려워도 조금만 노력하면 더 좋은 세상 살 수 있다고 믿고 아이들도 많이 낳았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무려 9남매를 낳았습니다. 7남매가 살아남았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고 고생하면서도 희망을 갖고 살았습니다.
요즘 청년들 편 갈라서 싸우고 안동에 남아야 하나, 서울로 가야 하나 고민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안동에서 직장도 구하고 짝도 구하고 아이도 낳고 살림도 차리고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이 있는 그런 나라를 꼭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정치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왜 정치를 하는가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높은 자리 하려고, 내가 편하려고 하는 일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일부로 더 힘들고 어려운 길을 선택해서 왔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치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희망을 가지고 꿈을 꾸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장은 어려울지라도 내 다음 세대들은 나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다, 우리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다섯째 아들 누구에게 물어보니 ‘얘 잘 키우면 나중에 출세한다. 호강한다’ 오로지 하나 믿고, 그래도 ‘얘는 나보다는 더 잘 살 것이다. 혹시 나중에 출세해서 나중에 노후에 도움도 조금 주겠지’ 이런 기대를 하고 살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행복 아닙니까.
정말 희망과 미래가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억울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희망이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은 모든 이들의 꿈일 테고, 제가 그중에서 특별히 더 생각하는 것은 희망을 넘어서서 공정한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비록 가난하고 어렵게 살지라도 비교당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많이 가진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굶어 죽을 정도의 절대빈곤을 벗어나는 것은 무조건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10대 경제 강국을 이야기하고, 복지 체제가 사각지대가 있어서 그렇지 정상적으로 제대로 작동하기만 하면 최소한 굶어 죽지는 않는 그런 사회가 됐지 않습니까. 이럴 때 불행이 무엇이냐면,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 때입니다. ‘억울하게 차별받았다, 억울하게 기회를 놓쳤다, 억울하게 기여한 만큼 갖지 못했다’는 것들 때문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그런 것을 지향한 것은 아니지만, 10대 경제 강국이 된 것처럼 10대 삶의 질 국가가 되면 좋겠습니다. 함께 잘 사는 세상, 이웃과도 화내고 갈등하고 증오하고 분열하지 않고, 서로 위해주고 존중하고 협력하면서 사는 사회를 만들면 좋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여러분도 아시지 않습니까. 초등학교 때는 성남으로 가는 주황색 완행열차가 7시간 걸리지 않습니까. 연착하면 9시간 걸리고 밤새도록 달립니다. 그 1976년 비 오는 날, 가족들과 보따리 싸서 무궁화 열차 타고 성남으로 갔더니 거기는 싸락눈이 내렸습니다. 싸락눈 내리는데 우리가 세 얻어놓은 집을 가려니 한참 산을 올랐어야 합니다. 그때 가족이 먹고살기가 어려우니 공장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그때는 희망이 있습니다. 어렵긴 하지만 내일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중에 제가 느꼈던 것은 그런 것입니다. 제가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에서 법을 확실하게 알게 되면서 ‘아, 내가 살았던 세상이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라기보다는, 내가 무능하고 게을러서라기보다는 전체적인 구조의 문제, 본인이 책임지지 않아도 될 문제도 상당히 크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난하고 차별받고 불평등하게 대우받는 것들이 꼭 개인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다 못 나고 잘못해서 그렇다. 숙명이고 하늘의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새로운 세상으로, 공정한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제가 정치를 하는 이유는 “제가 겪었던 이 어려움과 고통을 최소한 다른 사람들은 겪지 않게 하자. 우리 아이들은 겪지 않게 하자. 희망이 있는 사회, 공정한 나라를 만들자. 그래서 과감하게 도전하고 꿈을 키우는, 아이들도 많이 낳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그것이 이재명이 정치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칼날 위를 걷듯이 인생을 살아왔고, 엄청난 위기를 겪으며 이 자리까지 왔는데, 대체 일탈하지 않고 불가능한 도전을 한 원천이 무엇이냐?”고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제 어머니였습니다. 2년 전에 돌아가셔서 봉화군 명호면 관창리라고 하는 곳에 잠들어계십니다. 그런데 제 어머니는 정말로 저를 믿어주셨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다 지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넷째 아들이 반드시 잘 될 거라고 확신하셨습니다. 이유는 제가 말씀드리기가 조금 그렇긴 한데, 황당한 이유이지만 정말로 그렇게 믿고 싶으셨고 실제로 믿으셨습니다. 그 어머니의 믿음을 따랐습니다. 아무리 어려울 때도 제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래, 부모님이 이렇게 든든하게 버텨주고 계시는데. 내가 언제든 돌아가서 안길 수 있는데. 포근한 품이 있는데” 어떤 걸 하더라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다 어머니를 모시고, 또는 떠나셨을지도 모르지만, 어머니는 위대하지 않습니까. 모든 용기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제가 불가능한 도전을 하게 된 이유도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으니까. 언제든지 어머니는 안아주실 테니까. 실패해도 일으켜주실 테니까”, 그렇게 믿어서 제가 여기까지 오기에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이 큰 힘이 됐습니다. 고향에 오니까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어떻게 일탈하지 않았느냐 하면, 1978년 말쯤에 오리엔트 공장에 들어갔는데, 그때 야유회에 가서 처음으로 돼지고기를 볶아먹어 봤습니다. 그전에는 돼지고기 한 근, 반 근 사서 무 썰어놓고 한솥 이만하게 끓여서 고기만, 비계만 둥둥 뜨지 않습니까. 고기는 대체 누가 다 먹는 것입니까. 우리는 고기를 구워 먹는다는 상상을 못 했는데, 회사에서 돈을 대줘서 고기를 구워서 소주 한잔을 먹기도 했습니다. 저는 대학 갈 때까지 술을 한 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담배도 피지 않고 이탈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다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제 어머니 마음고생 많이 하시다가 돌아가셨지만, 제 어머니 이야기를 여러분께 하는 이유는 여기가 고향이니까, 여러분이 바로 어머니 같은 존재 아니겠습니까. 이 고향 땅에 묻히셨습니다.
대구, 경북, 안동 여러분이 이재명을 포근하게 안아주시고 이재명이 꿈꾸던 공정한 세상,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 힘 모아주시겠습니까. 정말로 행복했던 순간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여름에 모깃불 피워놓고 방 안은 더우니 밖에서 감자, 옥수수 쪄서 저녁을 때우며 평상에 발을 깔아놓고 드러누워 있으면 하늘에 별이 보입니다. 요즘은 오염돼서 그런지 별들이 다 사라졌던데, 마침 이 역 광장에서 여러분을 보니 저는 마치 별이 빛나는 밤에 평상 펴놓고 누워있는 것처럼 편안합니다.
원래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으로 머리를 두고 죽는다고 합니다.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고 합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하고 반갑고 존경스럽고 그렇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여러분,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이 대구, 경북, 안동, 점점 나빠지는 것을 보니 너무 가슴 아픕니다. 저도 언젠가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까. 제 조상들이 잠들어계시고, 어머니 아버지의 영혼이 저를 기다리십니다. 저도 언젠가는 여기에서 영혼을 묻을 것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땅입니까. 저의 모체와 같은 곳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것처럼, 앞으로 가는 길도 용기를 많이 주십시오.
누가 육사 유치를 써놓으셨는데, 제가 안동에 육사를 유치한다고 공약했다가 혼도 많이 났습니다. 원래 정치인들은 공약을 많이 하지만, 충돌하는 지역 공약은 잘 안 합니다. 왜냐하면 똑같이 하더라도 반대하는 쪽이 힘이 더 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굳이 특정 기관을 안동에 유치한다고 얘기했던 이유는 안동이 특별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육사 유치를 추진하던 그 지역에는 이것보다도 훨씬 더 나은 공공기관을 배치해서 균형을 맞춰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평생을 살면서 안동 출신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제가 양반인 줄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내와 등산을 갔는데 산에서 내려오던 50대쯤 되는 분들의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이재명 상것이다, 양반이다’ 그러다가 안동이 양반 동네라고 하니까 어떤 사람이 ‘양반 동네에 상것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한 소리 하려다가 참았습니다. 여러분, 안동은 대한민국 정신 문화의 수도 맞지 않습니까. 가장 독립운동가가 많았고 항일운동가가 많았고 선비정신으로 치사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바른길을 가는 선비정신입니다. 저는 제 정신의 상당 부분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끼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합니다. 여러분,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제가 좀 무리한 일이고 이례적인 일이긴 하지만 지금 신흥무관학교, 육사의 정신적 전신 아닙니까. 이상용 선생이 가산 팔아 독립운동하면서 국무령 할 때 신흥무관학교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 정신적 맥을 존중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가장 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한 정신 문화의 수도에 확실하게 호국정신을 심자고 해서 무리했습니다. 이 무리의 반발이 상당히 큽니다. 여러분이 다 보충해주실 거죠? 제가 드릴 말씀이 많은데 마이크 쓸 시간이 제한된다고 그만해야 한다고 합니다.
제가 몇 가지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을 통합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대한민국의 경제를 확실하게 살려내고 지방분권 잘해서 안동도 먹고살 만한 동네로 만들겠습니다. 세 번째, 전쟁 걱정, 군사위기, 안보 걱정하지 않는 코로나 디스카운트 없는 평화의 나라, 한반도를 확실하게 만들겠습니다. 안동을 잊지 않고 안동인으로서 여러분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년 2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보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