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국회의원워크숍] 김한길 원내대표-정기국회의 중요성과 전략
지난 석 달 동안 당이 어려운 상황에서 독배를 받는 심정으로 당의장을 맡아서 잘 이끌어주시고, 특히 서민경제 회복을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노력해 온 김근태 당의장께 뜨거운 박수 부탁드린다.
덕담을 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너무나 엄중해서 저는 현실을 얘기하겠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당 지지도와 대통령 지지도가 다 바닥이다. 보수신문들은 매일매일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우리를 공격하고 상처내기를 계속하고 있다. 사람들은 집권여당이면서 불임정당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지역구 다니기가, 사람 만나기가 겁난다고들 한다. 재보궐 선거는 했다하면 지고, 국회에서는 한나라당의 결재가 있어야 겨우 법안 몇 개를 통과시키고 있다. 당 지도부는 시도 때도 없이 자꾸 바뀌고, 비상체제가 상시체제처럼 돼 버렸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우리당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든든한 우리 편이었던 전라도도 여의치 않다. 경상도 출신 대통령이 있지만 경상도 민심은 요지부동이고, 행복도시 뭐다 했지만 충청도도 돌아앉아 버렸다. 6월 항쟁을 공유해서 언제나 우리 편인 줄만 알았던 30대 40대도 그렇고, 젊은 20대마저 한나라당이 더 좋다고 하고 있다. 이제는 국회의원들 각자가 자기 지역구 챙기는 것만으로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들은 모두 다 공유하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다가올 정치권의 큰 변화 앞에서, 뭉치면 우리가 변화를 주도할 것이고 흩어지면 우리가 변화의 객체가 되고 말 것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해서 망한다고들 말한다.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으로 부패해서 망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고, 우리는 뭉치지 못해서 손해 본 부분이 많았다. 개혁과 실용이라면서 싸우고, 난닝구와 빽바지 논쟁으로 세월을 까먹고, 당정분리라면서 당과 정이 따로 놀고, 여기저기서 긴장을 풀고 있다가 같은 것이 판치게 만들고, 겨우 당정청이 의견을 모아 하나 해내면 전체적으로 상처가 나건 말건 나 홀로 밖으로 딴소리 해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뭉치면 살고, 하나가 되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정기국회의 의미, 2006년 9월부터 12월까지의 의미, 대단히 중요하다. 아시는대로 사실상 우리에게 허락된 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했던 많은 약속들을 매듭지어야 하는 국회다. 약속했던 개혁과제들도 많다. 개혁입법들도 많다. 이것들을 그대로 놔두고 갈 수는 없다.
국민들이 먹고 사는 것을 도와주고 일자리 만드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개혁이다. 그래서 를 얘기했고, 서민경제 회복을 얘기하고 있고, 일자리 창출 의지를 거듭 밝혔다. 이것들을 위해서 필요한 법제화에 적극 나서야겠다. 이러한 의지를 예산에 반영하는데도 적극 나서야겠다. 바다이야기, 전시작통권, 한미FTA, 출총제, 사학법… 우리가 넘어야 할 파도들이 많다. 잘 넘어가자.
5·31 지방선거 이후에 제가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다. 우리는 매일같이 국민들께 짝사랑을 바치다가 처참하게 실연당한 심정이다, 그러나 우리가 국민들께 바쳤던 사랑이 진정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국민들께 다가선다면 아마도 국민들이 우리를 다시 받아주실 것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다시 자세를 가다듬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우선 이번 정기국회, 앞으로의 몇 달을 통해서 국민들께 우리가 성실한 국회의원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어야 한다. 국민들을 위해서 부지런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나로 제대로 뭉치기만 한다면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결코 그렇게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는 반드시 보여줘야 하겠다.
부패하지 않다는 것만 갖고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능하지 않다는 것을 반드시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민들께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부패와 반부패, 개혁과 반개혁, 이제 이런 구호는 정치적인 소구력을 많이 잃었다고 생각한다.
유능과 무능이라고 할 때, 우리가 저들보다 유능하다는 것을 반드시 그들에게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능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사분란하게 단일대오를 갖추고 정기국회에 임해야겠다.
이번 정기국회 일정을 여야가 합의한 결과, 국정감사를 10월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당은 마지막까지 법대로 9월 국정감사를 주장했지만, 야 4당이 강하게 10월 10일 이후의 국정감사를 주장했기 때문에 그것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9월 한 달이 사실상 빡빡하지 않은 일정으로 갈 것 같다. 이때 많은 법안 심의를 제대로 해내야 되겠다. 비교적 법안 심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이 9월에 많이 허용되기 때문에 이때 우리가 정교한 프로세스를 가지고 민생법안들을 제대로 다룰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여러 단체나 집단의 이해가 얽힌 부분에 대한 민생법안들의 경우에는 그분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모양새도 갖추고, 그것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 그분들을 참여시키고, 그 법안을 만들 때 그분들과 함께 기뻐하는 그런 방식이 어떨까 생각한다.
정책을 통해서 핵심적인 지지기반부터 회복해 내야 되겠다. 지역과 세대와 직능 등등의, 우리편이었던 사람들을 다시 우리편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감세와 안보라는 주제는 미국의 공화당이나 영국의 보수당이 개혁정당을 패배시킬때 주무기로 썼던 것들이다. 감세와 안보에 대해서 우리가 정교하고 제대로 된 반대논리로 철저하게 무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우리는 17대 총선에서 소위 반민주세력, 친일세력, 지역주의세력, 기생주의 세력, 잘못된 정치세력이라고 우리가 생각했던 분들을 정치무대의 중심에서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다. ‘저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소리쳐서 그들을 우리 정치 무대의 중심에서 몰아내는 데에는 성공했는데, 그 성공한 우리들이 본때있게 ‘이거다’하고 제대로 보여주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이제 일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정기국회를 통해서 우리가 ‘이거다’를 분명하게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은 여전히 ‘저건 아니다’의 대상이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우리보다 많이 높다고 하지만 그러나 한나라당이 잘해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사람들은 5%도 되지 않는다. ‘저건 아니다, 한나라당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두 한꺼번에 모여서 그 힘을 제대로 쓰기만 한다면, 그래서 ‘이거다’하고 제대로 보여주기만 한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2년 9월, 이맘때를 요즘에 생각해 본다.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이맘때, 지금보다 훨씬 참담했다. 우리 대통령후보의 지지율이 14-15%에 머물러 있었고, 우리당의 공식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우리당이었던 민주당의 주류들이 후단협을 구성해서 자기당의 공식 대통령 후보를 흔들어 댔던 악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불과 백일도 안 남은 대통령 선거에서 역전을 성공시켰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얼마 전에 입추가 지나고 여전히 날씨기 뜨거웠을 때 ‘가을은 이제 안 오나봐. 입추가 지났는데도 왜 이렇게 덥지?’라는 얘기들을 많이 했다. 제가 초선의원님들 모임에 가서 한번 얘기했다. 그러나 ‘가을이 오긴 온다. 여전히 날씨가 뜨겁긴 해도 우리가 모르지만 가을이 오고 있다. 저 땅속 깊은 곳에서, 나무 잎사귀 하나하나에 다 가을이 시작됐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입추가 지나고도 며칠동안 여름날처럼 뜨거웠던 것처럼, 지금은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저 땅속 깊은 곳에, 나무 잎사귀들의 끝자락에도 시대정신이 여전히 살아서 숨쉬고 있기 때문에 역사가 저들에게 이대로 끌려갈 수는 없고, 그래서 우리는 해내야하고 우리는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의 잠재된 힘을 스스로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해 낼 수 있다. 9월 정기국회는, 2006년 후반기 몇 달은, 우리가 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열심히 하자.
2006년 8월 31일
열린우리당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