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기 국민정치학교 이부영 당의장 특강

  • 게시자 :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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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일 : 2003-11-11 00:00:00
▷ 일 시 : 2004년 12월 7일(화) 20:00
▷ 장 소 :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

◈ 남북교류 협력시대의 정부 여당의 역할

국보법 문제로 말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왜 열린우리당이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의 눈으로 바라봐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한겨레 홍세화 논설위원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는데 그동안 우리가 걸어온 길이 역사의 단락을 넘어가는데 똑 부러지는 단락을 넘지는 못하는 것 같다라는 것이다. 주석일 선생이 ‘프랑스의 나치부역자 청산’이라는 책을 썼다. 오늘 출판기념회를 했는데 그 자리에 조문기 선생(독립운동가)이 “이 나라에 살기 싫다. 다른 나라들은 식민지 시절을 청산하면 그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한 시대를 냉정하게 정리하고 넘어가는데, 이 나라는 정리하기는 커녕 정리 대상에게 정리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청산당하는 한마디로 친일파들에게 독립운동가들이 청산당하는 이런 나라에서 살기 싫다.”는 말씀을 하셨다.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라는 것은 계속과 단절이다. 이를테면 신라가 백제 점령했던 시기에 백제 부흥군을 진압하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대피하고 그래서 단절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고려가 조선으로 이행할 때 혹은 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면서 지배세력을 흡수할 때 이는 단절과 계속이 공존하는 형태였을 것이다. 이는 신라가 백제를 점령한 것과는 다른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일제를 극복하지 못한 과정은 아마 단절 쪽보다는 계속이기 때문일 것이다. 청산이라는 말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의 과제는 사회 속에 남아 계속된 형태다. 역사는 토인비식으로 이야기하면 도전과 응전, 이렇게 말하는데 다른 말로 계속과 단절의 끊임없는 갈등이라 볼 수 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역사는 계속과 단절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이렇게 요즘 국보법의 폐기 여부를 놓고 겪는 갈등도 우리의 일제시대 청산, 여기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과거사 진상규명법도 진실과 화해를 위한 법이라 하였다. 그 말 자체가 어쩌면 단절보다는 계속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것을 역사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계속갈 수 없는 것이다. 60년이 지났어도 규정할 것을 규정치 않고 지나가면 역사가 아니다.
얼마 전에 나는 우리나라 유학의 거목이시고 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내신 유승국 선생님을 만났다. 힘들고 답답할 때 나는 가끔 숨어 계신 대학자(大學者) 분들을 만나 뵙곤 한다. 그런 분들이 제시하시는 우리민족에 대한 무한한 잠재력을 들으면서 나는 정치하면서 느끼는 중압감, 좌절감을 쉽게 극복하고 털어낼 수 있었다.
그 분은 우리민족이 이제 본격적으로 능력을 발휘할 때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다. 이때까지 우리 민족은 봉변(逢變)만 당하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봉변의 시대를 지나서 능변(能變)의 시대로 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들의 운명이나 삶에 대해 객체적이고 피동적 입장이 아니라, 이제 우리가 주인이 되어서 풀어가는 즉, ‘변화를 능수능란하게 맞이하는 시대’가 왔다는 뜻이다.
우리는 올림픽에서 9번째로 금메달을 많이 딴 국가다. 올 연말 수출액이 2천 6백억불로 예상되는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이고, 외환보유고도 그 어느 때보다도 많다. 비록 내수경기가 침체해 있고 실업자가 많지만 ‘경제 펀더맨틀’은 아주 튼튼한 편이다. 차세대 성장동력을 살펴봐도 전 세계에 내놓을 ‘세계 1위 상품’이 현재도 상당할 뿐더러 앞으로 훨씬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요즘 아시아에 일고 있는 한류의 이유는 우리의 다이나믹함이다. 꽉 짜여진 체계에서 그 틀 안에서만 사회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 한국에서는 벌어진다. 열정과 다이나믹함을 보고 중국, 일본, 동남아 사람들이 놀란다. 여러분은 그 속에 살기에 그 경이로움을 잘 알지 못한다. 다른 나라에서 보면 이것이 어마어마한 힘으로 보인다. 이런 엄청난 폭발을 우리 전체는 잘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밖에서는 보인다. 이런 것은 우리의 자신감으로 승화시켜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도 청년시절 왠지 모를 힘이 꽉 차오르는 것을 느끼지 않았나? 우리사회의 이런 에너지를 힘으로, 자신감으로 느낄 시기가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열린우리당을 이해하는 분들이라 생각하며 이야기하겠다. 우리당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남북의 화해교류협력평화공존의 시대를 열겠다는 제일의 목표를 가진 정당이다. 그런 목표 내세운 정당이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원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냉전분단이 아니라 남북의 화해ㆍ교류ㆍ협력ㆍ평화ㆍ공존을 내세운 정당이 최초로 신주류로 등장한 것이다. 분단냉전시대를 넘어 화해교류협력평화공존을 내세우는 세력이 국민의 지지를 얻어 과반수를 이루었다. 저는 이를 한국정치의 신쥬류 등장이라 본다. 지난 독재냉전분단을 고쳐 실질적인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목표가 열린우리당의 두번째 정체성이다. 세번째는 지역주의 등 분열대립을 국민통합으로 엮어내겠다는 것이다. 저는 신주류의 등장이 세월의 축적을 쌓아왔다고 본다. 4.19는 5.16으로 좌절되었고 60년대 학생, 지식인 운동이 유신으로 좌절되었다. 80년의 봄은 광주학살로 좌절 되었다. 그 이후의 역량이 87년 6월 항쟁으로 부분적으로 꽃피웠지만 완전한 성취를 유예당했다. 그러나 이제 21세기 초에 한국사회의 변화는 정치권에서 신주류의 등장으로 귀착되었다.
이렇게 정치권에서 신주류가 등장하자 다른 많은 부분들에서 리액션(반발,반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심각한 리액션에 열린우리당이 고전하고 있다. 역사에서 혹은 일반적 사회 현상에서도 하나의 현상이 생기면 이에 대한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신주류의 등장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그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고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분단시대에서 이런 정당이 과반수를 획득한 사실은 한국사에 있어 역사적 사건이다. 어찌 이런 일에 반동이 안 따르겠나? 당연한 순리라 생각하고 극복해 나가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한말에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탈하려고 할 때 우리는 수구파니 개화파니 나뉘어 싸우기만 했었다. 나는 그들이 방법론에 있어서는 달랐을지 몰라도 나라를 지키자는 생각에서는 동일했다고 본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서로 싸우다가 나라는 결국 망하게 되고, 그런 다음에 만주에 가서 다시 독립운동을 시작하려고 보니 그 심정이 얼마나 허망했겠는가?
1945년 해방 이후도 마찬가지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정권의 반대파들은 모두 자리잡을 수가 없었다. 북에서는 소련이 지원하는 김일성을 제외한 모든 세력 즉, 김두봉이나 현진국, 조만식 등은 모두가 제거되었다. 남쪽에서도 이승만과 친일파를 제외한 모든 세력 즉, 김구나 여운형 등은 모두 제거되었다. 이렇게 남북에 극단적인 양 세력만 남아있다가 결국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맞이했던 것이다.
얼마 전에 당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어떤 신문기자가 나보고 대뜸 ‘대한민국 정통성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기가 찼지만 나는 다음과 같이 반문한 바 있다. ‘남쪽에서 단일정부를 세우자는 사람들을 모두 제거한 것이 잘된 일이냐? 북에서도 김일성을 제외한 모든 세력들이 제거된 일이 잘된 일이냐? 남북 양쪽에서 공히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어떻게 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 그런 정도의 역사인식이라면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열린우리당 등장으로 남북화해교류협력평화공존하자는 세력이 국회 과반 점한 것이야 말로 정통성을 제대로 회복한 것이라 본다. 이제야 역사를 통시적으로 하나로 보는 세력-고구려,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고 일제강점기를 부정하는-, 그래서 결국은 한민족의 통일자주독립국가를 세우고자, 하나된 역사를 세우려는 세력이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세력으로 선 것이 정통성을 세운 것이다. 이를 좌파다 뭐다라고 하며 몰아세우는 그들이 보는 역사는 우리역사를 하나로 보지 않고 분열의 한국사를 지향한다. 그러나 우리는 통합의 한국사를 지향한다. 이는 봉변의 역사가 아닌 능변의 역사로 봉변의 시대가 아닌 능변의 시대로 바꾸는 신주도 세력이 나타났다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우리는 6.25동란 이후 이만한 나라를 만들었다. 어떤 이유로든 다시 전쟁이 일어나 우리의 성과를 잿더미로 만드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어떤 동맹, 어떤 우방도 우리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박한 표현일 수 있으나 우리의 우방이라 할지라도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정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외국에서 지원하는 밀가루, 설탕가루를 먹고 옷을 입을 때는 얘기 할 수도 없었겠지만, 이제는 우리도 미국이 외교적으로 어려울 때 요청하면 파병도 하고 협력을 해왔다. 요즘 미국의 약달러 정책으로 많은 나라의 돈이 미국으로 굴러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하여 우리도 미국의 경제에 도움을 주는 입장이다. 그래서 다른 문제도 아니고 한반도의 평화를 확보하는 일에 배치되는 정책이 강요되는데 대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하고 있듯이 많은 나라들과 협력하여 한반도의 평화가 구축되게 우리의 능력이 닿는 한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강대국의 일방주의적인 시도에 대해 작은 여러 나라들이 목소리내면 실현되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내년이 을사조약 100년 되는 해이다. 나라가 망하고 개화파, 수구파들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가서 만났다고 하는데, 그들은 그곳에 가서도 얼굴을 붉히고 헤어졌다고 한다. 개화파도, 수구파도 나라를 살리자는 목표는 같았는데 나라가 망한 후 독립운동을 하러 가서도 얼굴 붉히고 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라가 망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해방 직후, 해방공간에서 북은 북대로 소련군의 지원을 받는 사람들, 남은 미군의 지원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남북한의 단일정부를 세우려는 사람들은 제거되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근대사에서 이런 경험을 두번 겪었다. 그러면서 하나의 자주독립국가 건설에 실패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의 상황을 구한말이나 해방직후처럼 서로 싸우며 수수방관하고 있어야 하겠는가?
지금을 보자. 지난 60년간의 분단형태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북한은 수세적 입장이고 어려움에 처해있다. 자기를 배후 지원하던 중국, 러시아도 북한의 국가운영에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남북의 국력차이도 30 : 1 이다 북한은 현실적으로 핵미사일을 보유해도 남한의 지원이 없이는 국가적 생존을 이어나가기 어려운 입장에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남한의 경쟁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북한에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빨리 무너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시위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북에서 격변이 일어났을 때 어찌 감당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50년 전 좌우 대립 때 전쟁에 참가했거나 전쟁의 참화로 고생했던 그들의 시각은 1950~60년대에 머물러서 대안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북한에 격변이 일어나 그 후 이어질 후폭풍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지금 북한이 자신들의 체제유지를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핵개발을 하고 있다고 그들이 인정, 공개하고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북이 먹고 살만하고 넉넉하여 핵이나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북한의 체제변화, 정권 변화, 그런 것을 공공연히 주장하는 사람들의 위협이 그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무기개발을 선택하게 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를 건들면 이 무기로 가만있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라고 본다. 우리가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고 우리가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에게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를 바라지 않고, 붕괴가 한반도 안정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해 내고 북한이 자신들의 체제가 안정된다고 생각되면 협상장에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개성공단 등을 통해 그들의 어려운 여건을 개선할 탈출구가 보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요하는 과정에서 전쟁의 위협이나 원치 않는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화해협력교류를 통해 점진적인 남북 통합과정을 이루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봉변의 시대로부터 능변의 시대로 역사를 변화시키는 것이라 본다. ‘이는 너무 이상적이지 않느냐?’, ‘우리가 언제 믿고 신뢰하며 정치한 적 있는가?’, ‘그런 시대를 바라는 것은 너무 현실을 모르는 자세가 아닌가?’ 하는 질책성 질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길로 가는 것이 외통수라고 생각한다. 그길로 갈 수밖에 없다.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소리도 없지만 우리 민족에 흐르고 있는 무의식의 흐름이 열린우리당을 과반수로 만들었다고 본다. 이런 아우성이 이제 60년 만에 이 세력을 신주류로 만들어서 정치의 중심에 올려 세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정치 세력이 어설프기도 하고 의욕과잉일 수도 있고 말실수도 하고 순진하기도 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저는 이 세력이 앞으로 상당기간동안 우리의 역사를 짊어지고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다시 분단냉전을 앞세우는 세력에게 바통을 넘겨줄 수는 없다. 다시 “능변의 시대”에서 “봉변의 시대”로 되돌아 갈 수 없는 것이다.
저는 우리가 큰 배를 타고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를 앞으로 저어 가는데 그 중 몇이 노를 거꾸로 젓고 있다. 그래서 배가 뒤뚱거리며 앞으로 간다. 그들은 잘 저으란 소리를 해도 듣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데 방해되니 젓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중심이 되어 노를 저었을 때 거꾸로 노를 저어가면서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리의 동료를 배 바깥으로 던져 죽였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노를 거꾸로 저어도 설득하여 같이 갈 것이다. 절대 그 중 누구라도 배 바깥으로 던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 같이 살아가는 하나되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봉변을 당해왔던 시대를 종식하고, 21세기 능변의 시대를 열어나갈 것이다.



2004년 12월 7일
열린우리당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