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노동
[국회의원 이용우 국정감사 보도자료] 고용평등상담실 폐지하더니, 직장내 성희롱 상담 ‘70% 급감’
[단독] 고용평등상담실 폐지하더니, 직장내 성희롱 상담 ‘70% 급감’
올해 1~8월 고용상성차별 상담도 20% 감소 … 상담소 축소 영향, 이용우 의원 “사각지대 점검해야”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직장내 성희롱 사건은 매년 증가추세인데 노동부가 올해 1~8월 수행한 ‘직장내 성희롱’ 상담은 지난해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이 수행했던 상담의 30% 수준으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확인됐다.
20년 넘게 민간이 맡았던 고용평등상담을 노동부가 직접 수행하게 될 경우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가 갈 곳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된 모양새다.
모성보호 상담은 50% 넘게 증가
노동부는 2000년부터 24년간 민간 노동·여성단체에 위탁 운영하던 고용평등상담실 예산 12억1천500만원을 올해 전액 삭감했다. 전국에서 운영하던 19개 고용평등상담실은 문을 닫았다. 대신 노동부는 5억5천100만원의 예산을 편성해 전국 지방노동관서 8곳에 공무직 ‘고용평등상담지원관’을 2명씩 채용했다. 상담과 행정서비스를 연계해 권리구제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지만, 예산은 줄었고 상담 인프라도 축소됐다.
이는 상담건수와 질에 영향을 미쳤다. 올해 1~8월 고용평등상담지원관이 배치된 8개 지방노동관서가 진행한 ‘고용평등분야’ 상담건수는 2천52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상담실적(4천74건)의 61.9%였다. 임금체불과 부당해고 등 일반 노동상담은 제외한 수치다.
상담 주제별로 보면 모성보호 상담이 907건에서 1천418건으로 56.3% 늘었지만, 직장내 성희롱 상담은 2천999건에서 971건으로 67.6% 줄었다. 고용상 성차별 사건은 168건에서 134건으로 20% 감소했다.
노동부는 직장내 성희롱 상담이 크게 감소한 이유를 명확히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상담자수가 아니라 (상담수는 한 상담자를) 몇 번 상담했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민간은 재상담을 좀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모성보호의 경우 당연한 권리이고,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으니 상담이 많이 들어오는 것 아닐까 한다”고 덧붙였다. 직장내 성희롱 사건의 경우 사안이 복잡한 만큼 초기 상담이 재상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정부가 진행하는 상담에서 재상담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육아휴직 등 모성보호는 이미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정책 기조”라며 “직장내 성희롱 상담이 줄고 모성보호 상담이 늘어난 것은 정부가 허용하는 상담 분야에서 (상담사가) 권한을 가지고 지원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에서는 전문성이 반감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 편집 김효정 기자
상담 뒤 해결 방법 복잡한데
상담 처리 결과 집계도, 분석도 ‘허술’
상담의 처리 방식도 문제다. 노동부는 올해 1~8월 고용평등상담지원관이 수행한 상담 2천523건 중 7.25%(184건)는 내담자가 노동부에 진정 의사를 표시해 사건이 접수됐다고 설명했다. 그 외 사건은 어떻게 처리됐는지 유형을 분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권리구제 절차 안내와 같이 단순상담에 그친 것인지 내담자와 여러 차례 재상담을 진행해 기관이 문제를 해결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상담의 질 평가가 불가능하다. 노동부는 이전에는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에 △권리구제 절차 안내(단순상담) △위탁기관의 노력을 통한 해결 △노동부 사건 이송 △국민권익위원회 이송 △경찰 등 기타 기관 처리 등으로 상담 처리결과를 분류해 보고하도록 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민간과 정부의 평가 기준을 달리하는 것은 문제”라며 “민간에서 하던 사업을 정부가 직접 수행하겠다며 가져갔다면 기존 사업과 비교해 평가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 대표는 “모성보호 관련한 제도는 굉장히 빠르게 바뀌고 제도가 너무 많아 사람들이 정보를 찾기 어려워 상담실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이 경우 정보를 한 번에 제공해주면 끝나는 단순 상담들이 많지만 직장내 성희롱 상담은 그렇지 않다. 어떤 과정으로 상담을 처리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담사 지위·권한 보장 않으면
직장내 성희롱 상담 제 역할 어려워
이용우 의원은 “관영 상담이라는 이유로 피해 고백을 주저하는 사례는 없는지 사각지대를 점검하고, 민영기관에 다시 일부 위탁하는 등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혜정 소장은 “민간에서 위탁운영하냐, 관이 직접 운영하냐의 문제를 넘어서 상담사가 얼마나 독립적으로 여성노동자를 지원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고용평등상담지원관이 자신의 역량을 투여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다면 직장내 성희롱 같은 복잡한 사안을 지원하기 어려워진다”고 강조했다. 직장내 성희롱 사건에서 상담사가 피해자를 지원하려면 사업주가 제대로 조사했는지, 사업주의 책임을 다했는지, 피해자에게 불이익한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등 정황을 잘 파악해야 하는데 상담사에게 독립된 권한과 충분한 시간, 예산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상담시스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배진경 대표는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은 전국에서 19개가 운영됐지만 현재 정부는 8개 지역에서만 운영한다”며 “직장내 성희롱 상담은 내방 상담도 잦은데 11개 지역이 비는 셈이다. 이런 공백에 노동부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노동부는 내년 고용평등상담 사업에도 올해와 같은 수준의 예산을 편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