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대표 월간중앙 정치포럼 주최 강연
손학규 대표 월간중앙 정치포럼 주최 강연 - 성공한 정치
□ 일시 : 2008년 6월 18일 오전 7시
□ 장소 : 프라자호텔 4층 메이플룸
□ 참석 : 손학규 대표, 안민석, 신학용, 김재균, 박선숙, 전현희, 이춘석 의원
◎ 손학규 대표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을지 송구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성공사례를 얘기하라고 하는데 성공사례를 얘기할 위치는 아니다. 다만 이 포럼과 중앙미디어그룹이 추구하는 가치로서 ‘무능에서 유능으로, 사익에서 공익으로’라는 가치에 주목하고자 한다. ‘무능에서 유능으로, 사익에서 공익으로’는 정치의 핵심적 과제이자, 리더십의 조건이다.
오늘의 정국을 보면 정권이 탄생한지 백일 만에 상상할 수도 없었던 정치적 불안, 정치적 파탄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얘기치 못한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이렇게 된 것은 한마디로 무능을 보여주었고, 사익에 우선했기 때문이다. 우선 이명박 정부가 탄생한 것은 무엇보다도 경제 살리기에 대한 기대다. 유능한 정권을 기대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무능한 정부로 규정했고 경제실패를 대표적인 예로 들어 집중적으로 공략해서 정권을 획득했다. 그랬기 때문에 국민들께서는 경제 살리기에 대한 기대로 많은 문제점에도 이명박 정부를 선택했다. 그것도 530만 표라는 압도적 표차로 이명박 정부를 선택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기름 값이 올라 사회의 모든 분야가 고통을 받고 있다. 그리고 경제성장의 기대는 목표수치가 점점 낮아지다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이명박 정부의 탓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무능한 정권이 전정부에 책임을 넘기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되다. 예를 들겠다. 숭례문에 화재가 난 것이 이명박 정부의 책임은 분명히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김영삼 정부 때 성수대교, 대구열차사고 등 끈임 없이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국민들 사이에 그것을 나라님의 탓으로 돌리는 마음도 있었다. 더욱이 경제는 어쨌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만 되도 그 자체로 주가가 3,000은 오른다고 했지만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 뒤로 경제정책에 지속적인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극심한 갈등이 노정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이명박 정부가 과연 경제를 살릴 능력이 있나 하는 심각한 회의를 던져주었다. 그러다보니 경제파탄이 서민생활에 직결되었고, 거기에 더욱 불을 지른 것이 인사다. 부자, 대기업, 특정지역 위주로 인사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인사정책과 인수위의 섣부른 정책들이 국민들에게 위화감과 불신을 준 것이 사실이다. 그 다음이 공익의 문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보여준 것은 고소영 내각이라고 하는 특정 집단에 의한 패거리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절망감이다. 그리고 친박 복당문제를 끊임없이 여당 정치의 전부인 것처럼 보여준 것도 이명박 정부가 공적 이익보다 사적 이익, 붕당정치 세력을 중심으로 정치가 움직인다는 의혹과 비판을 가져왔다. 이 정부가 추구하는 공익이 국가경쟁력 강화라고 하지만 기업 프렌들리라고 하는 정책은 결국 친 대기업, 친 재벌정책으로 인식되었고 더욱이 공기업 민영화정책은 식자층에게는 대기업들이 하여금 유휴자금을 생산에 투자하기보다 공기업을 공짜로 먹기 위해 대기한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와 차별화한 것이 대북정책이었는데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의 단절을 대북정책에서 차별로 보여준다고 하면서 이 땅에 평화를 추구하고 남북 간에 평화가 시대적 흐름이라고 기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한 불안을 가져다주었다. 특히 북미가 가까워지고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마치 방관자처럼 전락하면서 이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이명박 정부는 국익보다 정치 공학적 접근을 했다. 저는 촛불시위를 사회적 요구의 변화와 정치 지형의 변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다. 사회적 요구의 변화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국민들이 이렇게 건강에 관심이 있는지 몰랐다고 고백했듯이 경제성장만 되면 국민들은 모든 것에 만족할 것이라고 착각했다는 것이다. 또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이 아직도 개발시대의 빵에 대한 욕구에만 굶주려 있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큰 잘못이다. 분명 국민들의 경제성장에 대한 요구가 있다. 그러나 그 경제성장의 요구는 기본적인 경제수준이 높아진 마당에는 경제적, 사회적 요구 또한 선진화될 수밖에 없음을 간과했다. 잘고 있듯이 독일에 녹색당이 출현한지 30년이 넘었다. 선진사회의 추가적인 요구야 말로 선진사회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생명, 자연, 인간의 재발견이 진보적 가치다. 평화라는 가치도 포함된다. 바로 엊그제 시청 앞 광장에 그 많은 인파가 이 거리를 꽉 매웠지만 그 군중은 21년 전 시청 앞을 가득 매웠던 군중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기본 성격은 국민 주권으로 같다. 그러나 21년 전은 독재에 항거한 국민 주권에 대한 요구였고, 지금은 우리의 삶을 제대로 보장하고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우리 스스로 지키겠다는 국민 주권이다. 제가 민주당 대표로 있지만 우리는 민주개혁세력을 자임한다. 민주평화개혁세력으로 우리 자신을 규정한다. 그러나 우리도 여기서는 반성해야하고 새로운 국민적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고 포용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깊은 반성해야한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의 구시대적 인식만을 일방적으로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10여 년 전부터 우리사회에 웰빙이 유행하고 있다. 웰빙이라는 용어는 대단히 현학적인 단어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화되어 우리 국민의 생활을 규정할 때 우리는 국민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잘 파악해야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쇠고기문제가 아무것도 아니고 살기 좋아지면 좋은 쇠고기를 더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정도의 선의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고백했듯이 우리 국민은 건강과 생명의 안전, 교육의 문제에 대해서 선진생활에 부족함이 있다면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민의식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요구는 아주 다양화된 요구로 표출된다. 시위를 준비하고 뒷받침한 광우병대책위에서 ‘1+5 어젠다’를 내놨지만, 그것을 두고 시위를 계속 끌고 가기위해서 일부러 의제로 선택했다고 인식한다면 큰 잘못이다. 의료보험의 문제도 저는 실제로 피부로 느낀다. 총선 때 유세에 나가서 만난 시민들, 특히 젊은 주부들로부터 의료보험 민영화는 절대 안 된다는 얘기를 무척 많이 들었다. 의료보험 민영화가 되었을 때 자칫 일반 서민들이 의료 혜택의 기회를 빼앗기거나 3류 시민으로 전락할 위기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행태를 보면 충분히 부자를 지원하고 서민을 무시할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에 불안이 더욱 증폭되는 것이다. 교육의 자율화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내재된 앞으로의 모습은 없는 가정은 불리한 조건에서 교육받는 것이 아니냐 하는 불안을 갖게 한다. 공기업 민영화도 마찬가지다.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서 일반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러나 상수도 관리를 수자원공사에 맡긴다고 하는데 상수도가 민영화되었을 때 그 부담이 누구에게 올지 국민들은 현명하게 잘 알고 있다. 서울시만 해도 상수도 보조금이 4천억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물 값으로 되었을 때는 가진 사람이나 안 가진 사람이나 똑같은 가격을 내고 써야한다. 그리고 아는 식자층에서는 대기업이 생산에 투자할 생각은 안하고 유휴자금을 어떻게 편하게 투자할 것인가, 공기업 인수로 쉽게 돈 벌려한다는 의혹이 있다. 대운하 문제를 보십시오. 대다수가 그렇게 반대해서 지금은 추진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국민적인 이해관계에 대해 이제 국민들이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는 이번 시위과정을 통해 국민들이 직접적 이해관계에 얼마나 민감하고 자칫 정치적으로 왜곡되거나, 잘못 이해되는가를 단적인 예를 통해 봤다. 얼마 전 버시바우 미국 대사가 야당대표에게 전화를 해서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 내용에 대해 실망했다고 불쾌한 어조로 얘기했다. 전화내용을 공개하기 전에 미 대사관에 의사를 전달하고 공개했다. 그동안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리고 저는 그것으로 그쳤다. 얼마 후 또 다시 버시바우 대사의 망언이라고 할 만 한 말이 나왔다. 대통령에 대해 직접 반박을 하고 한국민이 과학을 더 공부하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버시바우 대사가 잘못했지만 이것을 얘기하면 보수언론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의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쇠고기이고, 그 연장선상에 대운하, 공기업, 의료보험 방송 장악 등이 있다. 국민들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문제 이게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다음은 정치지형의 변화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정치권의 역할이 상당정도 제한되는 현실에 대해서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시민단체나 재야단체의 역할이 확대되는 것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것도 축소되고 있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참여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무현 정부가 표방한 참여민주주의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기술과 미디어의 변화 발전, 디지털 파워가 큰 정치세력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은 네트워크 파워다. 수시로 모였다 수시로 흩어지고, 익명성과 동시에 투명성이 본질이 된다. 블로그 하나하나가 언론이 되고, 개인 개인이 언론사 사장이고 편집국장이고 기자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된 사회현실이 정치지형을 바꾸는 것은 당연하다. 제가 야당의 대표로 시청 앞 광장에 같이 앉아 촛불을 들고 앉아 있으면서 두 가지 착잡한 생각이 교차했다. 하나는 6월 항쟁을 주도한 정통민주세력의 맥을 잊는 정당으로서 6.10 기념행사에 공식적으로 참여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시민민주주의를 실제로 실천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회와 야당은 무엇인가, 야당의 대표가 촛불을 들고 무슨 역할을 하나 하는 자괴감이 있었다. 시민들의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 호응하는 분도 있었고, 퉁명스럽게 반응하는 분도 있었고, 국회로 돌아가라는 분도 있었다. 이제 국회와 정부, 시민사회의 역할이 새롭게 규정될 필요가 있다. 쇠고기 촛불은 꺼질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든지 네트워크 파워는 순간적으로 조직되고 해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때그때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서 갈등구조가 표출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정치는 어떻게 표출될 것인가? 사회적 요구에 대한 대응이다. 이명박 정부가 530만 표의 차이로 집권하면서 오만과 독선에 차있었던 것이 이런 사태를 초래했고 국민의 인식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인식의 잘못이 있었지만 그 뒤에 발생한 사회적 요구에 제대로 대응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경제적 불만이 하루아침에 해결되지는 안았겠지만 서민대중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지고 접근하고 장기적 대처를 하는 안정된 자세를 보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대응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이나 자연 등 새로운 가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재협상이 국가의 이익에 반한다고 해도 국민들은 안 듣는다. 합리적 사고를 하고 이 정부를 지지했던 사람들이다. 개인의 생명이나 안전이 국가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해야한다. 대운하가 경제적 효용도 없지만 자연을 파괴한다는 국민의 인식에 제대로 대응했어야한다. 의료보험을 단지 의료산업 경쟁력 강화로만 대응하면 또 잘못을 범할 것이다. 공기업 민영화를 공기업의 경쟁력으로만 접근하면 실패할 것이다. 공교육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결론은 이명박 정부가 처음에 자신 있게 출범할 때는 이 국민들이 지난 10년의 좌파정부를 거부하니까 그 반대인 우파로 나가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다. 국민들이 노무현 정부를 전부 부정한 것이 아니다. 경쟁력, 효율성, 세계화의 잠재적 피해를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신자유주의 레토릭에 불과하다. 국민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정부와 정치가 필요하다. 생명과 자연, 인간가 이런 가치들이다. 이것이 제가 말씀드리는 진보적 가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진보는 끝났다는 생각을 했다면 큰 오산이다.
이명박 정부가 생각하는 진보는 협의의 낡은 진보다. 얼마 전 제가 흔히 보수언론으로 불리는 어떤 중진기자를 만나 좌파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했다. 개념이 잘못되었다. 진보적 가치가 엄연히 국민 사이에 생활로 자리 잡고 있다. 친북이나, 퍼주기가 아니다. 기업을 전부 때려죽이라는 진보적 가치가 아니다. 기업의 경쟁력이나 국가 이익을 다 인정하면서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에 기여하고 나에게 도움이 되어야한다는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고 자연을 보존해야한다는 생활적 가치다. 그것이 고전적 진보와 대별되는 새로운 진보다. 제가 얘기하는 새로운 진보는 인간, 생명, 자연을 존중하고 평화와 문화가 존중되는 가치다. 왜 문화인들이 진보적 정책에 앞장서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그들이 그것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또 한 측면에서는 선진이나 경쟁이라는 시장경제의 가치를 포용하는 것이다. 이것을 배척하지 않는다. 새로운 진보의 새로운 구성 요소는 유능한 진보다. 투쟁만 하는 좌파가 아니라 사회적 발전에 적극 기여하는 진보, 실용적 진보라고도 얘기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일자리를 만드는데 진보가 앞장선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조도 일자리를 만드는데 앞장서는 것이다. 제가 경기도시자를 할 때 한국노총 위원장과 외국에 가서 투자 유치를 했다. 공교육이나 진보, 문화도 구체적 실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문화사업의 진흥을 더욱 발전시켜서 경제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유능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진보가 국민들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참여민주주의와 시민민주주의에 대해 인정해야한다. 시민참여의 성과를 거두는 것은 정부나 국회다. 아무리 직접민주주의가 발달해도 그것을 제도화 시키지 않으면 국민들과 국가에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다. 정치의 영역을 계속 만들어가는 정치의 성과를 거둬내는 국회가 되어야한다. 정치는 시민 속에 들어가지만 단순히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선도해야 하고, 오늘의 현실에 따라가는 것만 아니라 미래를 준비해야한다. 결론을 말씀드리겠다. 정치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요구에 대응하는 것이 첫째고 그것이 역사정신이고 시대정신이다. 국민의 요구에 얼마나 대응하느냐가 정치의 본령이다. 제가 오래전에 친구에게 들은 얘기가 있다. 선장을 하는 친구인데 선장의 역할은 배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라고 얘기하더라. 배가 망망대해에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야 어디로 가야할지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단지 국민의 요구를 경제성장으로만 파악했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이다. 경제성장에 더해 인간다운 삶, 인간 공동체에 대한 요구를 채워야함을 간과한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포풀리즘과 다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가 고심하는 것이 관행과 관례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타파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의 요구에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요구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바로 비전이다. 저 자신 끊임없이 도전해오면서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학창시절에는 한일회담 반대 등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제 몸을 던졌고, 민주투쟁과 함께 도시 빈민의 문제, 노동자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기독교와 청계천에 들어갔다. 유신체제가 끝나면서 유학을 갔다. 세계를 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대학에 있으면서 제도정치에 들어가서 정치현실을 속에서 바꿔보겠다고 했다. 경기도지사를 하면서는 기업을 적극 끌어들이고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경쟁력을 논하고 당시 경기도에 많이 배치되어있던 미군과의 관계를 좀 더 적극적으로 펼쳐나가고자 했다. 그 후에는 민심대장정을 했고 그것이 제 정치의 바탕과 지표가 되었다.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는 광야에 홀로 서기도 했지만 대통령민주신당을 만들고 경선을 하고 대표를 맡을 때 언론에서 독배를 마신다고 했다. 그 결과가 역시 독배였다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설사 그것이 독배라고 해도 그것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면 제가 독배를 마시는 것에 유감은 없다. 종로에 나선 것도 결과가 빤함에도 미래를 개척하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건 개척하는 자세로 살아갈 것을 스스로 다짐한다. 항상 역사 발전 속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에 있어 유능한 진보를 추구하고 일반국민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기본가치로 삼고자 한다.
2008년 6월 18일
통합민주당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