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전 광주·이천 노동법률상담소 소장으로 있었던 26살의 청년 이재명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그 때 함께 일했던 김재기 씨가 2020년 6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말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바람을 타고 일어난 노동자 대투쟁으로 전국에 노동조합 조직화가 급속히 진행됐다. 하지만 당시 인구 20만 명 중 노동자가 8만여 명이나 되는 경기도 광주·이천·여주 지역은 2년이 지나도록 조용했다. 진보·노동단체 하나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 흔한 변호사 사무실도 찾기 어려웠다. 돈도 배경도 없던 노동자·농민들은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찾아가 호소할 곳이 없었다.
김재기(59.경기도 노인일자리지원센터 센터장)씨가 31년 전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함께 광주·이천 노동법률상담소를 운영했던 상황을 얘기하고 있다. 이제 막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26살 젊은 변호사 이재명이 그곳에 무료 노동법률상담소를 내겠다고 하자, 지역이 술렁거렸다. 공안 기관의 감시와 압박 때문에 찾아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고, 겨우 찾아낸겨우 찾아낸 곳이 창전파출소 건너편 건물 지하였다. 고양이 앞에 생선 꼴이었다. 정보과 형사들이 매일 상담소에 누가 언제 드나드는지 (파출소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억눌린 노동자·농민들의 불만은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하루에도 수십 명씩 상담소 문을 두드렸다.
당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국제연대위원이기도 했던 이재명 지사는 3년 동안 그곳에서 노동자·농민의 권익을 위한 활동을 벌인 뒤, 성남시에서 시민운동을 시작했는데..
윤정권의 폭망 이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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