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4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주는 깨달음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주는 깨달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국의 옥스퍼드크라이스트처치대학 수학 교수인 루이스 캐럴(Charles Lutwidge Dodgson, 1832 ~1898)의 소설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다. 이 작품은 어린 주인공이 꿈을 꾸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제목처럼 일상적인 규칙과 상식이 뒤섞인 환상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기서 ‘이상한 나라’는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과는 다른, 독특하고 놀라운 세계를 의미한다. 이 이상한 나라에서는 경험이나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비논리와 불가능한 예측, 시간과 공간이 뒤섞이고, 동물들이 말을 하는 비현실적인 상황들이 벌어진다. 따라서 이 작품을 부조리 문학(不條理文學, literature of the absurd)으로도 보는 학자들도 있다.
‘부조리 문학’이란 인간 존재의 무의미성, 의사소통의 차단, 인간 의지의 무력함, 인간의 야수성과 비생명성, 즉 인간의 부조리한 세계를 보여주는 문학이란 뜻이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며 대한민국이 마치 저 이상한 나라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대통령실 황상무 시민사회수석이 특정 언론을 지목하여 “MBC는 잘 들어.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고 말했다. 40여 년 전 사건으로 언론을 겁박하는 행태이다. 채 상병 사건의 당사자로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하였다. 장관을 지낸 이를 하위직 대사로 임명하여 출국을 시켰다. 그것도 공수처 허락을 득했다고 하지만 공수처는 그런 적이 없다는 성명을 냈고 호주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하였다. 여기에 입틀막 정권, 검찰 공화국, 추락하는 언론지수, 민주화지수, …독재국가라고까지 전 세계 언론에 떠돈다.
그래,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든 지도자 윤석열과 한동훈의 신언서판을 짚어보려 한다. 신언서판은 당나라 관리 선발의 네 가지 표준이다.『당서』「선거지」에, “사람을 뽑는 법이 네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는 신(身)인데 풍채가 늠름하게 생겨야 하고, 둘째는 언(言)인데 말을 정직하게 잘 해야 하며, 셋째는 서(書)인데 글씨를 바르게 써야 하고, 넷째는 판(判)인데 문리가 익숙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 풀이하면 몸은 바른 자세이며, 말은 옳은 말이요 글씨는 반듯하고 판단력은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네 가지 척도를 우리 또한 관리 선발이나 사람 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렇게 선발되거나 평가된 이들을 인재이니, 동량이니, 학자이니, 선비라하여 백성들의 지도자로 삼았다.
정신의학에서는 사람을 한 가지 면으로 판단하면 미숙하다고 본다. 또 연구에 의하면 의사전달효과의 약 55%는 몸짓, 표정, 시선에 의존한다. 즉 비언어적 요소가 가장 크고 음성과 억양이 38%, 7%만이 실제 말한 내용이라 한다. 이를 보면 지금도 신언서판이 꽤 설득력이 있는 사람 평가 기준으로 손색없다. 이 전통이 우리의 몸에 젖어 하나의 문화로 면면이 현재까지 내려오며 품격 있는 사람을 가리는 전형으로도 인정한다.
한 나라 지도자들이요, 30~36% 대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저이들을 신언서판에 맞추어 본다. ‘신’부터 보면, 한 사람은 뒤뚱거리며 고개를 자주 두리번거리고 행짜가 몸에 밴 듯하며 너볏하지 못하다. 한 사람 역시 머리를 들까불고 키높이 구두를 신었는데도 사진을 찍을 때면 까치발까지 해대 나이에 비해 설익은 듯하며 웃음이 얄망궂다. ‘언’은 한 사람은 비논리적이며 종종 우격다짐을 하며 사용하는 어휘가 투박하고 즉흥적이요, 명령조다. 한 사람은 얄밉상스럽고 엇된 것이 빈정거리는 투며 스타카토(Staccato, 길이를 줄여 짧게 연주하라는 기호. 단조로운 선율에 변화를 주거나 특정 부분에 강조를 주는 음악용어) 어법을 이제 익히는지 부자연스럽고 엉뚱한 대답으로 얼더듬어 ‘동훈서답’이란 별칭도 만들어졌단다.
‘서’를 보자면 한 사람의 글씨는 좀 초등학생처럼 덩둘해 보이고 한 사람은 들쭉날쭉한 것이 정돈된 서체는 아니다. ‘판’은 두 사람 모두 정치인으로서 학점을 주자면 ‘F’이다. 백성이 이 나라의 주인인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왕조시절에도 ‘천하에 두려워할 대상은 오직 백성뿐’이라 하였다. 대한민국헌법 1조 ②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또 두 사람 모두 ‘옳다 아니면 그르다’, ‘맞다 아니면 틀리다’라는 단순한 2치적 사고로 세상을 판단한다. 견해가 다른 상대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외골수로 자기주장만 고집하며 무조건 내 말은 옳고 저쪽은 틀리다고 한다. 이는 확증적 편향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우리의 사람 평가 기준과 분명 엇박자를 빗는데도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라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를 한국인의 사람 평가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예요, 지도자 상이 바뀌는 증거란 점으로 이해해야 하나? 내 깜냥으로 이해하기 어렵기에, 2024년 내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하다. 월트디즈니사에서 만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당신이 과거를 바꿀 순 없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통해 배울 수는 있다고 믿는다.(You cannot change the past, but I daresay you might learn from it.)” 난 오늘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
저작권자 © 복지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https://www.bokji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