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3)거부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자들과 망치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자들과 망치
‘망치가 가벼우면 못이 솟는다’ 윗사람이 위엄이 없으면 아랫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하고 반항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이다. “불가역적! 7854명 전공의 면허정지! 절차 돌입!” 오늘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보도다. 공권력과 이에 응전하는 의사협회의 전선이 점점 긴장도를 더한다.
동물은 삶을 생각하지 않아 생존하지만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삶을 생각한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의식이다. 다른 말로 철학이라 해도 좋다. 이 시절 의식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보았으면 하는 영화가 한 편 있다. 치로 구에라 감독의 <바바리안>이다. 2021년 개봉된 영화로 조니 뎁, 로버트 패틴슨, 마크 라이런스가 호연하였다. 이 영화는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J.M. 굿시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바바리안>은 ‘야만’을 주제로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복종이 무엇인지, 그리고 의식이 없을 때 인간은 어디까지 악해지는지, 거부할 수 없는 공포를 강요당하는지를 잔잔하면서도 섬뜩하게 보여준다. 내용은 인간적인 치안 판사(마크 라이런스 분(扮))가 거주하는 국경지역에 문명화된 제국에서 파견된 졸 대령(조니 뎁 분)과 그의 군인들이 들어온다. 그들의 임무는 ‘야만인(바바리안)’을 가려내고 섬멸하는 일이다. 졸 대령에게는 순순한 마음을 가진 원주민이 야만인으로 보였다. 졸 대령이 휘두르는 폭력에 원주민인 바바리안은 속절없이 당한다.
바바리안(barbarian)은 ‘이방인’, 혹은 ‘야만스러운 자’, ‘참고 듣지 못할 말을 하는 자’로 매우 경멸스러운 뜻이다. 실제 바바리안은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등장한 단어이다. 로마는 제국 주변에 사는 외부인을 야만족, 즉 바바리안이라 칭했다. 그러나 로마가 문명의 이기를 앞세워 잔인하게 주변국을 점령하여 노예국으로 만든 행위가 야만인지, 아니면 침공을 당한 사람들이 야만인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2024년 대한민국, 결코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정상적인 국가라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로마의 바바리안 못지않은 ‘대한민국 바바리안’들이 우리 사회에 폭력을 가해서다. 이번 의사 증원 문제를 두고 행하는 정부의 행태만 해도 그렇다. 의사와 정부의 대립만이 아니다. 의사와 시민도, 전공의들도, 전공의와 교수도 갈라지고 시민들도 정부를 지지하는 쪽과 의사를 지지하는 쪽으로 나뉘어 삿대질을 해댄다.
의사증원은 반드시 해야 할 문제임에는 분명하다. 1998년 의대 입학정원은 3507명이었다. 그러다 2006년 3058명으로 줄어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줄어든 이유는 2000년 의약 분업 사태 당시 의사들 위로 차원이었다.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12명, OECD 평균인 3.69명보다 1.57명 적다. 의대 졸업생 수 또한 인구 10만 명당 7.2명으로 OECD 평균(13.2명)의 절반 수준이다. 증원 추진의 합리적 명분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선거철이 코앞인 지금 왜? 그것도 일시에 2000명을 증원하느냐?이다. 내년 입학생이 3507명에서 5500명이 된다는 말인데 교육현장에서 이를 감당해 낼까? 과목은 다르지만 대학에 근무하는 내가 보기에도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지금 의료대란이 일어난 것도 아니다. 한국은 OECD 중 수명 3위, 의료 격차 2위, 의료 제공 1위,… 등 저비용 고효율의 의료 복지국가임에 틀림없다.(문제는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연간 17.2회)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등 의료 시스템 개선에 있다. 이는 의료인의 문제기에 더 이상 논하지 않는다.) 80% 국민들이 바라보는 의사들에 대한 곱지 않는 시선을 이용한 선거 전략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을 둘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언제나 그렇다. 지금까지 이 의대 증원 문제를 두고 대학생 신분인 의대생과 이미 교수나 전문의로 활동하는 기성세대 사이에 낀 젊은 전공의들이 앞장섰다. 이제 전공의들에 대한 징계가 사실화되자 의대교수들도 집단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제자들이 자격증을 박탈 받는데 번연히 보고 있을 스승이 어디 있겠는가. 국론은 더욱 분열되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은 번연한 이치다.
다시 <바바리안>으로 돌아간다. 영화는 무엇이 문명이고 야만인지를 묻는다.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받은 야만인, 그 바바리안을 없애겠다는 졸 대령이 들고 있는 망치, 망치를 든 졸 대령이 “야만인!”이라 망치로 내려치는 것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집단이기, 특권의식,…운운하며 “불가역적! 7854명 전공의 면허정지!”하는 행정명령이 엉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바바리안> 포스터에는 망치를 들고 있는 제국의 졸 대령 아래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진정한 야만은 누구인가?”
‘망치가 가벼우면 못이 솟는다!’ 마치 윤석열 정권은 이 속담처럼 권력의 힘으로 누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망치로 얻어맞은 놈 홍두깨로 친다’는 속담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앙갚음은 제가 받은 피해보다 더 크게 하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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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고 몰염치한 고민정
선거 한달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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