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 정권, 감당 못하면 짐을 내려놓으시지요.
이태원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이 글을 쓰는 심정이 참담하다. 지난 20일, 국감장에서 ‘대통령 의전비서관의 딸인 초등학교 3학년 ㄴ양이 2학년 후배에게 전치 9주의 상해를 입혔으나 학급 교체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는 폭로가 있었다. 이 보도가 나오자 비서관은 당일 사직서를 제출했고, 대통령실은 몰랐었다며 곧바로 수리했다. 이 상황을 보며 마치 ‘당나귀 정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꾸짖어도 들을 줄 모르고 하는 짓이 너무 어리석기 때문이다.
당나귀에게 미안하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당나귀는 대체로 어리석은 동물로 희화된다. 「호랑이 껍질을 쓴 당나귀」를 비롯하여, 「노래하는 당나귀」·「소금 짐을 지고 가던 당나귀」·「검주(黔州)의 당나귀」 들도 모두 그렇다. 이 중, 「호랑이 껍질을 쓴 당나귀」는 당나귀가 호랑이 껍질을 뒤집어쓴 이야기다. 그러니 다른 동물들이 모두 무서워 슬금슬금 피하였다. 그런데 무심코 당나귀가 소리를 질러 그 정체가 드러나고 모두에게 비웃음거리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우언이 주는 교훈은 어리석고 졸렬한 사람들이 실제보다 대단하게 보이려 하나, 그것이 헛된 짓이라는 꾸지람이다. 영어 속어인 ‘바보, 똥고집쟁이, 꼴통’ 등을 가리키는 말이 수탕나귀인 Ass(애스) 혹은 Jackass(잭애스)도 이에서 비롯되었다.
잘못 되었으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수습해야 옳다. 대통령 의전비서관의 딸 폭행은 단순한 사표수리로 끝날 사건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첫째: 사건 처리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 행사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 학교폭력이 발생한 것이 지난 7월 18일이다. 그리고 이달 5일 학폭위에서 ‘학급교체’ 처분을 내렸다. 처분은 ‘고의성·심각성·지속성·반성정도·화해정도’ 등 5개 평가 지표(각 지표당 0~4점)에 따라 정해진다. ㄴ양은 2주 간 3차례 폭행을 하였다. 이런 상습적 폭행에도 학폭위 ‘지속성’이 1점이란다. 3개월 동안이나 이 사건이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까지 더하면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작동한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한 부분이다.
둘째: 대통령실에서 알았으면 감춘 것이요, 몰랐다면 무능이다. 이런 일을 담당하는 공직기강비서관실도 따로 있다.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의 딸 학폭을 어떻게 모를 수 있는가? 사건이 일어난 지 3개월이 경과하도록 대한민국 최고 정보를 갖고 있는 대통령실에서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의문이다. 더욱이 사건을 처리한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국민의 힘이요,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지낸 사람이다.
셋째: 부모의 어이없는 태도이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이 2학년 여학생을 화장실로 데려가 리코더와 주먹으로 때려 전치 9주의 상해를 입혔다는 것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끔찍한 가해이다. 그런데 가해자 엄마는 딸의 행동이 후배에 대한 ‘사랑의 매’라 하고 카톡에 윤석열 대통령과 남편이 함께 찍힌 사진을 올려놨다. 남편의 지위를 이용하여 피해자에게 위압을 가하는 못된 제 2의 가해이다. 도저히 보통 상식을 갖은 부모라면 못할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행태이다.
이런데도 대통령실은 “이는 공직자로서 지위가 진상 조사 등 이후 절차에 영향을 줄 가능성 자체를 원천 차단하는 선제적 조치”라며 대통령이 무슨 단안이라도 내린 양 호들갑을 떤다. 일단 당사자를 대기 발령 시켜놓고 사건을 면밀히 조사해 처리해야 옳지 않은가. 이 정부 출발부터 지금까지 감당 못하는 짐을 지고 위태위태하게 가는 ‘당나귀 정권’을 보는 것도 지친다. 감당 못하면 짐을 내려놓는 게 낫다. 호랑이 껍질을 썼다고 당나귀가 호랑이가 되지 않는다.
“누군가 한 사람이 ‘당신은 당나귀’라고 하더라도 개의치 말라. 그러나 두 사람 이상이 당신을 당나귀라 하거든 스스로를 위해 미리 안장을 사 두어라.” 『탈무드』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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