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43) 홍범도 장군을 육사에서 퇴출하지 말아야 할 이유 ③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43) 홍범도 장군을 육사에서 퇴출하지 말아야 할 이유 ③
⑤자유시 참변과 공산당 운운: 우리 독립운동 사상 최대의 비극인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 28일 일어났다. 고려혁명군사의회가 사할린의용대를 친 사건이다.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가담하였다는 주장은 '뉴라이트 계열'의 일부 주장일 뿐이다. 학술적으로 자유시 참변 때 홍범도는 그 곳에 없었고 다음 날 참변 현장에 와 보고 통곡했다는 게 정론이다. 이 참변을 직접 목격한 독립군 김승일의 기록은 이렇다. “낮 12시…한 방의 총소리가 나더니 그에 이어 양측에서 사격이 시작되었습니다.…그(참변) 이튿날 싸특의용군(사할린의용대)에서 탈퇴하여 자유시에 와 있던 홍범도 군대와 하사양성소 두 부대에서 군인 80여 명을 동원하여 전장(참변현장) 소제를 하였습니다.…이 전장 소제 부대를 내가 지휘하였습니다. 즉 전사자들의 시체를 거두어 매장하였습니다.”(『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홍범도 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99쪽: 이하 '쪽' 인용은 같은 책이다.) 이를 보면 홍범도 부대는 참변을 당한 싸특의용군 측이었으나 탈퇴했고 자유시 참변 다음 날 그 장소에 가 청소했음이 증명된다. 홍범도와 의병 활동을 한 최계립 역시 “범도 동무가 자유시 사변시에 군인들을 데리고 솔밭 속에 앉아 통곡하던 일을 생각하면 오랜 세월이지만 눈물이 납니다.”(위의 책, 41쪽)한다. 이 참변으로 군사재판이 열리고 홍 장군이 위원을 맡았다. 여러 증언들을 통해 '홍 장군의 명망과 권위 때문에 선임'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홍범도 장군이 레닌(Ле́нин,1870~1924)을 만나 환대 받은 것을 두고도 딴지를 건다. 장군이 레닌을 만난 것은 1922년(54세)이다. 당시 레닌은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가 원수였다. 그는 일본군과 싸우는 조선 독립군들에게 우호적이었고 자금도 대주었다.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 대장으로서 몸을 의탁하고 있는 국가의 원수를 만난 게 무슨 문제인가. 1927년 공산당 가입도 운운한다. 그 당시 중국은 제1차 국공 내전(1927~1936)으로, 소련은 나치 독일과 독소전쟁(1941~1945)으로 지금처럼 1당 독재 공산당이 아닌, '반제국주의'와 '민족해방투쟁'이 국가 이념일 때였다. 또 장군의 나이 이미 60세였고 연금을 받기 위해서였지, 공산당원으로서 활동하려 한 게 아니었다.
⑥말년: 홍범도는 69세인 1937년, 스탈린의 한인[고려인]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말년을 보낸다. 이때 자서전 『홍범도 일지』를 썼다. 고려인들은 '나는 홍범도, 뛰는 홍범도'라며 숭앙했고 그를 주인공으로 한 <의병들>이란 연극을 고려극장에서 공연했다. 해방 두 해 전인 1943년 10월 25일, 이국땅에서 구슬프고 격정적인 삶을 마쳤을 때 그의 나이 75세, 직업은 고려극장 관리인이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분골쇄신하였던 홍범도의 삶이 대략 이렇다. 박정희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로 그의 삶을 추모했다.
⑦뉴라이트 계열의 역사의식: 시대와 권세는 한 때고 역사는 영원하다. 겨우 5년의 시대를 위임 받은 권력으로는 이 나라 역사를 바꾸지 못한다. 대한민국 국방을 책임지는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이런 분 흉상이 자랑스럽게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의병 대장 홍범도가 가입한 '공산당'은 북한 공산당이 아니요, '자유시 참변' 또한 식민사관을 숙주로 하는 뉴라이트 계열 일부의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 뉴라이트 계열을 이끄는 것이 현재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이다. 이 위원회 수장은 이배용 위원장이다. 이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친일, 이승만 독재, 박정희 군사 독재 미화 시비를 일으킨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의 장본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에도 역사교과서의 '민주주의' 표기를 유신헌법에 보이는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고 '이승만 독재' 삭제를 주도하였으며 끊임없이 공산주의 이념과 식민사관을 부추긴다.
⑧독립군은 육사가 계승해야 할 적통 군대이다: 2021년 8월15일 광복절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있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와 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대전현충원이 있는 유성구는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을 기념하고 '홍범도장군로' 명예도로까지 지정했다. “평생을 민족의 독립을 향한 일념으로 일제에 맞선 장군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마음속 깊이 담아 이 길에 '홍범도장군로'라는 이름을 부여합니다.”라 적힌 안내판까지 세웠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이런 '홍범도장군로'도 없애고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 그리고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을 육사에서 퇴출하려 한다. 이제는 육사 충무관에 있는 홍범도, 김좌진 장군, 안중근 의사 등 독립 영웅 6명의 이름을 따 만든 교실인 '독립 전쟁 영웅실'까지 없애려 들고 을사늑약을 체결한 친일 매국노 이완용을 옹호하는 작자를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현 대통령은 부부동반으로 공산 국가 베트남을 찾아 호찌민에게 조화를 바치고 참배까지 하였다.(2023.6.23.) 그런데 어찌 내 나라, 내 강토를 지키려 가정과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친 의병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가? 그 폄훼 수준이 현대판 부관참시(剖棺斬屍)이다. 우리 헌법 전문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라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은 광복을 위해 싸운 저 독립군[의병] 뿐이다. 당연히 해방 후 육사가 계승해야 할 적통 군대이다. 1922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참석 당시, 홍범도 장군은 조사표에 자필로 이렇게 적었다. “직업: 의병!, 입국 목적: 고려 독립!” 2023년 10월, 아직도 저 이는 의병 대장으로서 조국의 진정한 독립을 외치며 어느 이국 땅 구천(九泉)을 떠도는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본문에서 언급한 문헌 외에 『중국조선혁명투쟁사』(2009), 『빨치산 대장 홍범도 평전』(2013), 『홍범도 장군』(2014), 『민족의 장군 홍범도』(2023), 그리고 여러 논문을 참조했음을 밝힌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 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 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215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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