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교정 호국비도 박정희 친필 휘호...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케케묵은 이념 논쟁 벗어나야
호국비의 글씨를 쓴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만주군 장교로 복무했다. 해방 후에는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를 나와 국군으로 복무했다.
박정희는 1948년 11월 특무대에 체포됐다. 당시 군은 여순반란사건을 계기로 군대 내 좌익 전력자 숙군(군부 숙청) 작업을 진행했는데, 남로당에 가입했던 박정희 당시 소령도 적발됐다.
1949년 군사법정에 선 박정희는 1심 재판에서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에서는 구체적으로 박정희의 범죄 사실이 나온다. 박정희의 죄명은 '반란기도죄'이다. 당시 판결문을 보면 남로당에 가입해 군 내부에 비밀세포를 조직하여 무력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반란을 기도했다고 나와 있다. 당시 판결문 첫째 장에 박정희의 이름이 나올 만큼 그는 반란군 수괴로 꼽혔던 인물이다.
이 판결로 박정희는 현역 육군 소령에서 파면됐다가 백선엽을 주축으로 한 만주군관학교 출신 선배들의 도움으로 육군본부 정보국에서 비공식 문관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을 계기로 겨우 현역 군인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남로당이 군인 박정희를 몰락시켰다면 김일성의 6.25 남침이 정치군인이자 독재자 박정희를 탄생시킨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겠다. 남로당 수괴'가 쓴 육사 호국비, 이건 어쩔 셈인가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이전 글이 없습니다.
댓글
이런기사 칭찬해
만주군 간도특설대가 독립군을 제거하고
죄없이 학살한 조선의 양민 부녀자 아이들이 얼마나 될지
백선엽이가 간도특설대에서 활약했었죠
해방 후엔 영어 배워서 친미 군인으로 훈장받으며
자손들은 강남에 땅 가지고 떵떵 거리며 살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