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비대위대표, 대한상의 초청 조찬 강연
김종인 비대위대표, 대한상의 초청 조찬 강연
□ 일시 : 2016년 8월 22일 오전7시30분
□ 장소 :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
■ 김종인 비대위대표
박용만 회장께서 지난 6월 국회를 방문하셔서 차를 한잔 나누는 과정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해서 필요하다면 제가 한번 상공인들에게 종합적으로 얘기를 해줄 수 있다고 해서 오늘 강연이 잡힌 것 같다.
제가 정치인으로서 이런 강연을 한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썩 내키질 않는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 대해 굉장히 자랑을 많이 했다. 짧은 기간에 세계경제에서 유래가 없는 산업화와 성장을 이뤄냈고, 동시에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가리켜 동전의 양면이 동시에 이뤄진 나라라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세계 추세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경제운영과 관련해서 지나치게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과정을 볼 때 과연 이 문제들을 완화시키지 않고 한국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남북 분단 상황에서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의 계기가 올지도 모르는데 우리 사회가 이러한 모습을 보이면 과연 가능하겠냐는 회의를 저 나름대로 갖는다.
저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경제 정책에 관여한 사람으로서 늘 생각하는 것이 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황제가 루이 16세였다. 루이 16세는 세상이 혁명을 맞이하여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에 “나는 10년 전부터 이런 사태가 올 것이라고 예견을 했고, 안 왔으면 했는데 왜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경제를 공부하고 경제를 예측하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세계 경제나 우리 경제를 볼 때 이 상태가 지속되면 어떠한 결과가 초래될지 예견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낙관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것 같다. 걱정이 없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걱정을 하면서 그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1997년 IMF 사태를 겪을 때에도 우리가 뭐라고 했는가? 그해 7월에 태국, 인도네시아에서 외환 위기가 발생한 뒤 우리나라에서 경제를 잘 안다는 대부분의 사람들, 연구기관, 언론 모두가 대한민국은 기초가 튼튼하니까 우리는 절대로 외환위기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90년대 당시 경제정책 운영상황을 보면 틀림없이 외환위기가 올 것이 훤히 내다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고 산 것이다. 결국 97년 외환위기를 맞이할 때 이미 사태는 끝났던 것이다. 당시 매우 당황하면서도 국민들의 열의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받아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그 이후 우리나라의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이 그동안 왜곡된 경제구조를 다시 한 번 시정해서 정상적인 경제구조로 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했는데 그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해서 1985년을 기준으로 25년 동안 압축 성장을 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압축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경제사회구조가 엄청나게 왜곡됐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1987년 지금의 헌법을 재정할 때 헌법개정특위의 경제조항을 맡은 책임자로서 헌법 조항에 ‘경제민주화’라는 말을 집어넣었다. 그렇다면 제가 왜 경제민주화라는 조항을 큰 반대를 무릅쓰고, 심지어 당시 대통령께 그 조항을 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집어넣겠는가? 저는 우리사회가 제도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헌법상에 그 같은 조항이 없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집어넣었다.
제가 다른 나라의 예를 몇 가지 들겠다. 자본주의가 19세기 후반부에 왜곡된 방향으로 발전되어 그때부터 이미 자산은 일부 계층에 집중되기 시작하고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공격을 받고 위험에 처했을 때에 그 위험을 제일 먼저 터득한 사람이 독일의 비스마르크 제상이다.
비스마르크가 자본주의를 구하고 자유주의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모두의 자유를 조금씩 억제하고 양보해야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것이 오늘날의 전통이 되어 독일이 사회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경제의 효율을 지속하고 있다.
좋은 예는 20세기 초에 들어와서의 티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업적이다. 미국 역시 19세기 말에 부의 편재로 인하여 독과점 등의 문제로 사회가 굉장히 어지러웠다. 1890년 셔먼법이 제정이 되어 독과점 문제를 다루려고 했지만, 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를 가진 지도자가 없었다.
그런데 1900년, 20세기 첫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공화당의 맥퀸리가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당시 뉴욕 주지사였던 루스벨트가 미국의 잘못된 관행에 대한 비판을 가하니 그의 입을 막기 위해서 맥퀸리의 러닝메이트로 지명해서 부통령으로 만들었다.
미국 역사의 큰 변화를 가져오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맥퀸리가 취임한지 두 달 만에 죽었다. 티어도어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평소 미국 경제사회구조를 변혁해야 한다는 철두철미한 신념이 있었고 ‘스탠더드 오일’이라고 불리던 록펠러의 독점 체제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의 재계는 티어도어 루스벨트 이후,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인해서 의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독과점 상황에서 모은 재산들이 전부 대학과 재단을 만드는데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기초가 되어 윌슨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거쳐 미국 사회의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에서 미국이 가장 우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해준 하나의 모범 사례로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 자본주의가 안정적으로 발전을 한 것이다.
이를 가리켜 자본주의의 안정적인 발전이라는 것은 제도가 제대로 설정이 됐을 때 효율과 안정을 가져온다고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시장이라는 장치와 의회민주주의라는 장치이며, 이 둘이 상호작용을 통해 오늘날 북미경제의 효율과 안정을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발전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렇게 유지된 것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20세기 들어서서 2차 대전 이후 1960년 말 월남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 사회는 엄청난 구조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우리가 흔히 기업가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미국의 자본주의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자본주의, 미국의 시장경제가 움직이는 틀은 굉장히 엄격하다. 그 속에서 미국이 세계적인 국가로 발전을 하다가 1980년대 레이거노믹스가 등장하고, 신자유주의가 대두되면서 미국 사회는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1980년대 미국 근로자의 실질 임금이 금융 위기가 발생했던 2006년까지 30여 년 동안 단 1%도 증가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미국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갖게 되는 것이다. 1% 대 99% 사회, 1%가 소득의 20%를 차지하고 1%의 최상위 계층이 미국 재산의 40%를 점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자본주의가 위기라며 미래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새로 시작된 이야기가 ‘포용적 성장’이다.
제가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민주화를 한참 강조하고 있을 때에 미국에서는 포용적 성장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포용적 성장은 무엇인가? 과거와 같은 성장 패턴으로는 도저히 사회의 안정을 가져올 수 없고, 사회의 안정을 가져오지 않으면 경제의 효율과 경제의 활성화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경제 세력의 지나친 이기주의적 생각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이다.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시작된 것이 1930년대 스웨덴이 혼란에 빠져 오늘날 복지 국가를 건설하는 기초를 다졌던 알빈 한손 수상 때부터다. 한손 수상은 정치의 민주화, 사회의 민주화, 경제의 민주화라는 이야기를 했다. 경제 민주화가 포용하지 않으면 정치 민주화와 사회 민주화는 허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전제 하에서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한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참뜻이 무엇인가? 공정한 질서를 확립하고 어떠한 세력도 지나치게 자기주장대로 경제나 국가를 끌어가려는 것은 막자는 것이 경제민주화이다. 다시 말해서 시장은 보다 더 공정하게 움직이고 독과점 체제가 시장을 지배하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시장은 하늘에서 떨어진 자연적 부산물이 아니다. 시장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각기 능력을 다르게 갖고 태어난다. 그런데 사람의 기본적인 본능은 탐욕이다. 탐욕의 본능이 끝없이 작용하게 되면 타인의 자유를 해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공동사회는 이뤄질 수 없다.
흔히 기업을 하는데 불편을 없애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많이 한다. 그러나 그 불편을 해소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이로 인해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해서 헌법상에 여러 가지 규정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장이 공정한 기능을 발휘하려면 제도적인 틀이 짜여 지지 않는다면 절대로 안 된다.
그리고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이 아니다. 흔히 시장에다 맡기면 다 잘되는데 왜 정부가 이래저래 간섭을 하느냐고 한다. 한때 일본의 경제가 승승장구할 때 70년대 말~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기업들은 정치는 필요 없다고 자만하며 이야기했다. 기업들이 다 할 수 있는데 정치가 오히려 기업을 방해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1993년 이후 일본이 침체에 빠져서 20여년 이상 스태그네이션에 들어갔을 때 제대로 된 정치 지도자를 확보하지 못해 오늘날의 상황이 왔다고 이야기한다.
정치는 사회의 전반적인 조화를 이루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경제민주화를 말로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이룩해서 경제 효율을 발휘하고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확고한 신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경제민주화를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완벽하게 만들어놓아도 이를 실천할 의지가 없다면 경제민주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요즘 우리 경제를 보자. 창의력이 매우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사회는 수직적인 경영스타일이 내려오는 풍토이다. 이 수직적인 경영방식으로는 창의력을 가져올 수 없다. 시장경제의 특성상 사람이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집중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다. 그것을 억누르면 효율이 나오지 않으니 그 자체는 인정을 하되 집중화된 경제 권력을 집행해나가는 절차를 민주화하자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수평적인 협의가 가능해지고, 창의력이 있는 인재가 나오고, 창의적인 인재가 나올 때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있다.
최근의 ‘아베노믹스’를 갖고 설명을 하자면, 한때 환율이 평가 절하되어 일본에 수출이 늘어나는 착시적인 현상으로 아베노믹스가 굉장히 잘되는 것처럼 보였다. 한때 우리도 아베노믹스 같이 해보자면서 돈을 풀면 뭔가 될 것 같이 정책 시도를 했다. 그러나 최근 아베노믹스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고, 일본 재계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일본 재계가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없었다. 기업 이사회에 회사에서 잘 시도하지 않는 외부 이사를 최소 두 명 정도 넣어 이사회 운영을 해보자고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것이 일본이 경제의 구조조정을 할 수 없는 가장 큰 저해요인이라고들 얘기한다. 최근에 브렉시트 이후 영국을 보면, 새롭게 테레사 메이 수상이 등장해서 영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근로자 대표를 기업 경영이사회에 참여시키는 제도를 해보자고 얘기하고 있다. 어느 나라나 자기네가 처한 상황에서 돌파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 같으면 제도의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노동시장의 문제가 가장 복잡하다. 여러분은 우리나라도 노동개혁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경제에 희망이 없다고 얘기한다. 일정부분 저도 동의한다. 노동개혁을 해야 하는데 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가. 사회 전반에 그와 같은 합의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지 않다.
독일 수상을 지냈던 슈뢰더는 정권을 잃을 각오를 하고 2020개혁을 성공시키겠다고 한다. 독일 사회의 내면을 모르는 사람들이 피상적 결과만 갖고서 얘기하는 것이다. 독일의 사회구조는 오랜 역사를 통해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독일은 49년 서독연방공화국이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연정을 피해본 적이 없다. 1957년 서독연방공화국에서 보수정당인 ‘기민당(CDU)’라는 정당이 유일하게 단독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선거결과를 가졌다. 그럼에도 그 당시 수상이었던 아데나는 또다시 연정을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안정이 되고 나라가 편안해지려면 항상 정부 내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상호협의를 하고 운영하는 시스템이 결과로 보면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안정적이라는 것이 입증이 되고 있다.
이런 소리를 들으시면 좀 언짢아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하지만, 저는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다루면서 여러 차례 그런 과정을 스스로 체험했다. 우리나라에서 부를 많이 가지고 계신 분들의 사고는 “나는 좀 예외적인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에 불편을 느낄 것 같으면 사람을 굉장히 당황스럽게도 만든다.
제가 독일에 있을 때 여러 번 그런 소리를 들었다. 저를 찾아오는 분들에게 “나를 찾아올 필요가 절대로 없다. 나라가 정한 룰을 그대로 지키면 된다. 그 룰을 위반했으면 당연히 처벌 받아야 하고, 그 룰을 안 지키려면 그 룰을 없애야지 그러지 않고서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으니 절대로 그러한 요구를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경우에 따라서 어떤 때는 상당히 위협적인 언사도 행사하고, 어떤 때는 회유적인 얘기도 했다. 이렇게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가장 공정한 룰이 지켜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시장경제의 효율을 위해서 개인에게 말로 하는 단계는 지났다. 탐욕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정부가 제도 장치로 사람의 행태를 변화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탐욕을 제어시키려면 일정한 제도적 압박을 가하지 않으면 될 수 없다.
자유주의를 주장했던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의회에 편지를 보내 “사람의 욕망이 끝이 없어서 욕망, 탐욕을 그대로 인정하면 우리가 사는 공동체가 파괴될 염려가 있다. 탐욕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해 달라.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공동체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2007~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일어났을 때 그 원인으로 시스템 자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런 금융위기가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며 금융규제를 강화하고 금융감독체계를 확실하게 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국제회의가 G20회의다.
G20회의 1~3차 회의 때까지는 금방 금융제도를 강화하고 감독체제를 강화할 것 같았다. 하지만 냄새만 풍기고 G20회의가 지금 10년 가까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금융규제와 감독체제는 크게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바로 돈을 만지는 세력들의 강력한 로비활동이 제도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의 대선을 놓고서 일어나는 아주 해괴한 선거의 풍토다.
양극화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고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기술발전은 지속되니까 중산층이 점점 몰락하고 중산층의 기능이 점점 없어졌다. 이것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잘 이끌 것인가. 포용적 성장이란 말을 4~5년 동안 지속하고 있고, IMF, OECD, G20회의, APEC회의에서도 포용적 성장을 얘기한다. 포용적 성장은 경제민주화를 통한 제도적 장치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절대로 안 된다.
포용적 성장을 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만 지금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활력을 갖고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를 반대하는 쪽에선 조금이라도 특정한 제도가 들어와서 나에게 불편할지도 모르니까 ‘재벌개혁’, ‘재벌해체’라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나라 형편에서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확립해서 경제민주화를 지키도록 가야 한다. 누구든 예외를 인정받아서 ‘나는 독자적으로 다른 사람’이라는 독자적 풍토를 절대 용인해선 안 된다. 한국이 가진 제도만으로도 상당부분 실행하려면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도자의 의지가 확실하지 못해서 못했다.
제가 한번 체험한 바를 말씀드리겠다. 90년 모 재벌의 불공정 사례를 발견해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불공정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후속조치가 없었다. 제가 공정거래위원장을 불러서 “왜 판정해놓고 후속조치를 하지 않느냐. 불공정거래라는 게 확인이 됐으면 검찰에 고발하는 게 정상인데 왜 고발을 안 하느냐”고 했더니 “대단히 죄송하지만 고발하면 뭐 하느냐. 검찰이 기소하지 않는데 제가 고발하면 오히려 저희만 나쁜 사람이 되기 때문에 고발 안 한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한국 관료가 어떻게 저런 얘기를 할 수 있는가 생각했다. 결국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담합, 불공정거래, 갑을관계, 하청업체와의 다툼 같은 것들을 관장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투명하지가 않다. 밖에서 공정거래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전속고발권이 존재하는 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능이 제대로 이행될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갖고 있는 고유권한이라는 전속고발권을 그대로 존속시키는 한 공정거래위원회에 파수꾼 역할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제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경제민주화를 하려는 의지를 갖는 지도자를 갖지 못하면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도 결국 밝지 못하다.
지금 전세계의 경제 운영 상황을 보면, 앞으로 20년 후에는 지금 말하는 신기술이 엄청나게 성숙화되어 4차 산업혁명이 거의 완성기에 들어가게 된다. 많은 중산층이 가졌던 일자리가 대체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온다. 그러면 한 30년 안에 소득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지게 된다.
생산을 해도 그 생산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계층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건은 잔뜩 만들어냈는데 살 사람이 없으면 경제가 정상화될 수 있겠는가. 앞으로 다가오는 사회의 변화를 빨리 제대로 수용하고 적응하려면 우리 사회의 여건을 거기에 맞게 조성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따라가지 못한다.
국회 연설을 통해 미래를 생각해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까지도 파악하지 않으면 우리가 미래를 끌고 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한 적이 있다. 비단 최근에만 얘기되는 것이 아니다. 과거 포드가 자동차를 만들면서 자동차를 컨베이어 벨트에서 잔뜩 생산해내도 구매할 사람이 없으면 자동차 생산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동차가 자동차를 구매할 수 없지 않는가. 그런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극단적인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고 아마 여기 앉아계신 분들 중에는 잘 느끼시지 못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 사회의 분열이 심화될 대로 심화돼 어느 상황에 가서 무엇이 이뤄질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탐욕 본능만 타고 나는 게 아니다. 자연적으로 생존 본능을 갖고 세상에 나온다. 최소한 탐욕과 생존 본능이 부딪히는 그런 상황은 피해야하는 게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정부 지도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이끌어오던 그런 행태를 변화시키려면 우리 사회의 제도적인 장치를 새롭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확실하게 말씀드린다.
제가 2012년도 대통령선거에서 경제민주화 얘기를 많이 했더니 가장 관심을 갖고 찾아온 사람들이 일본대사관 사람들이다. 대사와 공사가 찾아와 왜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지 물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한민국은 당신 나라를 벤치마킹해서 나름대로 성공했는데, 지금 보면 당신들이 어두운 시간에 빠져드는 과정으로 한국경제도 흘러들어가는 것 같아 보여서 사전에 차단하고 새로운 틀을 제공하기 위해서 경제민주화를 얘기한 것이다” 이렇게 답을 하면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는다. 자기네들이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니 질문하지 않는 것이다.
제가 90년 초반 일본 어느 유수 정치인을 만났는데 “일본이 앞으로 희망이 없다”고 했다. 90년 초반 일본에 희망이 없다고 하면 미친 소리라고 했을 것이다. “왜 희망이 없냐?”고 하니 “경직된 일본관료, 경직된 일본 대기업 조직구조, 무능한 자민당의 행태. 이 셋이 결합됐기 때문에 일본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고 있다.
제가 정치권에 들어가서 우리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문제,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우리가 여기에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지금까지 70여 년 동안 관습화되어온 체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미래도 그리 밝지 않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여러분이 우려하는 것처럼 마치 경제인을 옥죄는 듯한 경제민주화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우리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말씀드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경제민주화에 대해서 다른 오해는 없으시길 바라면서 제 강의를 마치겠다.
2016년 8월 22일
더불어민주당 공보실